
마에스트로 정명훈(72)이 10년 만에 국내 오케스트라의 수장으로 돌아왔다. 과거 서울시향 음악감독 시절 정명훈이 '성과'와 '완성도'에 방점을 찍었다면, 일흔이 넘어 돌아온 거장은 '여유'와 '책임'을 강조했다.
정명훈 KBS교향악단 제10대 음악감독은 26일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직을 맡기엔 너무 늦었다(Too late)고 생각했으나, 조국에 대한 책임감과 음악가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결심을 굳혔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 감독의 국내 악단 복귀는 지난 2015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떠난 이후 10년 만이다. 그는 "20년 전 서울시향 시절엔 '올림픽 팀'을 만들듯 확실한 목표와 조건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이제는 음악가들이 마음껏 연주할 수 있도록 돕고, 무대 위 모든 책임은 내가 지는 지휘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KBS교향악단은 예전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했다"며 "그 자리에 걸맞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악단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단원들이 동료와 함께 만드는 음악의 위대함을 체감하고, 스스로 프라이드를 느끼는 악단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2026년부터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과 부산클래식,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직을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일각에서 제기된 물리적 시간 부족 우려에 대해 그는 미국 등 기타 해외 일정을 대부분 정리하고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 세 거점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단원들이기에 짧은 시간에도 깊은 소통이 가능하다"며 "물리적인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라고 덧붙였다.
KBS교향악단 측은 이번 정 감독 영입을 위해 상당 기간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환 KBS교향악단 사장은 "창단 70주년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악단의 정체성과 미래를 설계할 음악감독이었다"며 "거장과 함께 악단의 방향성을 정립하는 것이 공영방송 악단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선택"이라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정 감독과 악단의 인연은 깊다. 1995년 UN 총회장 특별연주회 지휘를 시작으로 1998년 제5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했으며, 2021년에는 악단 최초의 계관지휘자로 위촉되며 호흡을 맞춰왔다. 특히 2024년 대규모 합창 레퍼토리와 2025년 브람스 교향곡 전곡 사이클을 통해 보여준 음악적 응집력이 돋보였다.
음악감독으로서 정 감독의 공식 행보는 2026년 1월 16일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으로 시작된다. 임기 첫해 총 5회(정기 3회, 기획 2회)의 무대를 직접 진두지휘한다.
특히 2026년은 '말러 시리즈'와 '콘서트 오페라'를 선보인다. 3월과 10월에는 각각 말러 교향곡 5번과 4번을 무대에 올린다. 4월 18일 예정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콘서트 버전은 1997년 국내 최초로 콘서트 오페라를 도입했던 거장이 29년 만에 KBS교향악단과 다시 호흡을 맞추는 상징적 무대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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