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말이야. 이거 좀 배웠다고 나중에 선물, 옵션 손대면 안 된다.”복학생 시절이던 2006년 ‘파생금융상품’이라는 수업에서 선물과 옵션에 대해 열강을 이어가던 교수님이 신신당부한 얘기다. 말만 경제학과 학생이지 실전에는 무지렁이인 제자들이 혹시라도 ‘패가망신 직행열차’에 탑승할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런 대안을 제시해 줬다.
“S&P500지수는 투자할 만하지. 중간에 떨어지기도 할 텐데 꾸준히 사면 돼. 그러면 돈 벌 거다.”

미국 증시의 장기 수익률부터 적립식 투자에서 발생하는 코스트 에버리징 효과까지. 알토란 같은 설명을 다 들어놓고 ‘아, 그렇구나’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갔던 내가 아직도 밉다. 당시 1000을 조금 넘던 S&P500지수, 지금 7000이 코앞이다. 아르바이트한 돈부터 차곡차곡 쌓아갔다면 ‘경제적 자유’에 몇 걸음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은사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것은 직장인이 되고서도 한참 뒤였다.
물론 그때 실행에 옮기려 했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해외 주식 투자 자체가 생소했고, 초보자가 쉽게 접근할 수단도 없었으니 말이다. S&P500지수를 따라가는 상장지수펀드(ETF)는 당시 국내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에게 S&P500 장기 투자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재테크 입문의 기본 코스로 자리 잡았다.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길게 보고 매달 모아간다는 Z세대 개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못 믿어도 ‘슨피(S&P)’는 자신의 노후를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꽤 있다.
한국은행 총재의 말마따나 ‘쿨해서, 유행이어서’ 그러는 걸까. 아닐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지를 고민한 결과다. S&P500지수는 지난 10년 동안에도 연평균 수익률 12.9%를 기록했다. 안정적이고 우월한 성과가 데이터로 입증되고 있고, ETF라는 편리한 투자 도구도 등장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미장 투자의 장점은 물론 리스크까지 속속들이 파헤쳐 주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 충분히 알고 한다. 한은 총재 발언에서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얘기해줘야 한다”고 코인 투자자를 타이르던 예전 금융위원장 같은 권위주의가 느껴져 불쾌했다는 2030세대가 적지 않은 이유다.
국내 ETF 시장에서는 올해 여름을 기점으로 ‘TIGER 미국S&P500’이 ‘KODEX 200’을 추월해 순자산 1위에 안착했다. 출시 5년 된 ETF가 국내 최초의 ETF를 밀어낸 것인데,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 증시의 모든 S&P500 ETF를 통틀어서도 몸집이 가장 커졌다고 한다. 투자법의 세대교체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변화라고 본다.
한국경제신문이 연재하고 있는 ‘2025 증시 개미투자 리포트’의 심층 인터뷰 결과를 보면 “국장에선 단타하고, 장투는 미장에서 한다”는 대목이 있다. 올해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 상승률은 20%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피지수는 70% 안팎의 연간 상승률로 한 해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이 정도로 많이 오른 건 1999년(82.8%) 후 처음이다. 코스피의 역대급 선전에도 불구하고 ‘과연 장투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투자자들은 선뜻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숙제다. 밸류업 정책을 우직하게 밀어붙여 국내 증시의 매력을 높이는 정공법밖에 없다.
최근 해외 투자 수요를 억제하려는 당국과 반발하는 서학개미 사이에 형성된 대치 전선은 그런 면에서 참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인가. 환율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슨 카드든 동원해야 하는 당국자들의 고충도 짐작은 된다. 하지만 구멍이 많고 세련되지도 못하다. 당장 국내시장복귀계좌(RIA)를 놓고 “미국 주식 팔아 비과세 챙기고, 다른 국내 주식 팔아 미장 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해부터는 증권사들이 서학개미에게 주던 이런저런 혜택도 사라진다고 한다. 당국 지침에 따라 수수료 인하, 환율 우대 같은 마케팅이 속속 중단될 예정이다. 미국 투자 정보 제공을 중단하는 증권사마저 나왔다. 2026년에 봐야 하나 싶은, 쿨하지 못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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