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새로 짜는 세계 질서에서 한국은 정말 중요해질 겁니다.”
월가의 유명 리서치 회사 스트래티거스의 니컬러스 본색 사장은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한국의 조선과 방위산업을 세계 경제의 “숨은 보석”에 빗댔다. 또 한국은 원래도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지만 요즘은 전략적 중요도가 더 커졌다고 했다. 올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성과를 낸 것도 미국이 한국의 위상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내년 미국 경기에 관해선 낙관적으로 전망했지만 인공지능(AI) 관련주 주가가 급락하면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최악은 피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전략은) 겉으로 보기엔 ‘미친 듯 보이지만 나름의 방식’이 있었습니다. 중국 등 적대국에는 관세 ‘몽둥이’를 세게 휘두르고, 반대로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는 상대적으로 완화된 접근을 했습니다.”
▷미국이 한국과의 조선업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인가요.
“한국의 숨은 보석은 조선업과 방산입니다. 저는 최근 ‘새로운 주권국’이란 표현을 많이 씁니다. 과거부터 전략적으로 중요했지만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국가 경제 역량 등이 질적으로 달라진 나라들입니다. 한국이 대표적이죠. 미국은 세계 질서의 판을 다시 짜고 있습니다. 한국과 호주 같은 나라가 앞으로 (미국에) 정말 중요해질 것입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고용 둔화를 우려해 최근 기준금리를 내렸습니다.
“미국 경제의 약 70%는 소비고, 소비는 결국 고용과 소득에 달려 있습니다. Fed는 금리 완화 쪽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장기금리는 오히려 상승 중이죠. 주택 가격과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르면 소비에 부담을 줍니다.”
▷금리 인하 땐 소비 진작 효과도 있지 않나요.
“정책금리 인하는 주가 상승 효과로 인해 자산 보유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계층은 상대적으로 소외됩니다.”
▷관세와 리쇼어링(기업 유턴)이 고용 효과로 이어지기까진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오래 걸릴 것입니다.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겨도 가장 효율적인 자동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중간관리자와 같은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습니다. 미국 소비를 가장 강하게 떠받치는 계층은 바로 이 중간관리자와 고소득층입니다.”
▷Fed는 내년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고 물가는 더 낮아질 것으로 봅니다.
“미국에는 내년 경기를 떠받칠 강력한 재정정책이 있습니다. 지난여름 통과된 감세 법안이죠. 내년 4월 세금 신고 기간부터 약 1500억달러의 세금 환급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내년에 소비를 직접적으로 자극할 겁니다. 법안에는 기업 설비투자, 세액공제, 감가상각 확대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는 시간이 걸리지만 2026년과 2027년에 걸쳐 효과를 낼 수 있죠.”
▷내년에 있을 북미 월드컵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나요.
“여행과 레저 소비는 내년에 큰 테마가 될 수 있고, 이는 성장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이후 2027년으로 넘어갈 때 자생적인 성장 동력이 이어질지는 의문입니다. 대규모 부양책 이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AI 기업의 주가가 미국 소비를 떠받치고 있다는 시각에 동의합니까.
“AI 관련 설비투자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간접적으로 소비에도 영향을 줍니다. 다만 AI 주가와 소비를 1 대 1로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죠. 만약 AI 대표 종목이 급락해 경제적 충격이 생긴다면 경기 침체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주가 하락이 금융시장과 심리를 동시에 흔드는 ‘휩소(whipsaw) 효과’(톱날처럼 급등락이 반복)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거품론’도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AI는 데이터센터·반도체·전력 등 인프라 구축이 중심인 국면이었지만 앞으로는 AI가 실제로 기업 생산성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AI 핵심 기업 주가는 변동성을 겪을 수 있으나 AI의 성장 스토리 자체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채가 많은 AI 기업에 대한 우려는 없나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미국이나 세계 경제가 다시 금융위기급의 심각한 침체를 겪는다면 그 원인 중 하나는 신용시장, 특히 불투명한 크레디트(신용) 구조일 가능성이 큽니다.”
▷AI 기업 일부는 사모 신용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모 신용 업계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문제가 없다면 100쪽짜리 설명 자료가 필요 없을 겁니다. 이는 수면 아래에 문제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 문제는 은행 규제로 은행권 밖으로 밀려난 부실 신용과 AI산업에서 나타나는 벤더 파이낸싱(판매자가 구매자에게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는 것) 구조가 결합하면서 더 커질 수 있습니다.”
▷AI 기업을 제외한 사모 신용 시장 자체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문제는 가격의 불투명성입니다. 사모 신용 시장에선 평가 가치가 액면가 근처에서 거의 변하지 않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면 자금은 계속 유입되고, 자산은 지속적으로 추가됩니다. 최근 챕터11(파산보호) 신청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걸 보면 모든 사모 신용 자산이 멀쩡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붕괴할 것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액면가 100%로 평가될 시장도 아닙니다.”
▷차기 Fed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이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선 과정에서 경쟁 구도를 길게 끌며 충성도를 시험합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인선도 그랬죠. 워시와 케빈 해싯(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모두 자격은 충분합니다. 워시는 특히 통화정책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내년 금리 인하가 Fed 전망보다 더 공격적일 가능성은 없나요.
“일각에선 Fed 의장 자리를 얻기 위해 (후보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리 인하를 약속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을 중립 수준으로 되돌린 뒤 후임에게 넘기려는 의지가 강해 보입니다. Fed가 백악관에 완전히 종속되는 구조가 중간선거 이후에도 계속 힘을 가질지는 모르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이 마지막 임기고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잃을 수도 있죠. 이후 Fed 의장이 백악관에 덜 맞춰도 되는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장기 국채금리는 어떻게 봅니까.
“여러 조건이 장기금리 상승을 가리킵니다. 일본이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면서 글로벌 국채금리의 하단이 올라가고, 전체 금리 밴드(범위)가 위로 이동하고 있죠.”
▷미국 장기 국채금리 상승이 달러 위상 약화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나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서서히 약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 시장에서 그 신호가 보입니다. 단번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침식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엄청난 생산성 혁신이 없다면 장기금리 상승 흐름을 막기 어렵죠. 많은 이가 AI에 (생산성 혁신에 대한)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확실한 해법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내년 미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무엇인가요.
“원자재 시장입니다. 원자재 시장의 중심이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싱가포르와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실물 수요가 늘어나면서 (실수요와 관계없는) 종이 거래 중심의 구조가 흔들리고 있죠. 이는 단순한 수급 문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변화입니다. 탈세계화, 달러 헤게모니 약화와 맞물려 가격 변동성과 공급망 불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워싱턴 관가 분위기 정확하게 전달 정평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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