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이 독주에만 특출나고 합주에는 약하다는 건 옛말이다. 요즘은 해외 어딜 가든 한국인 단원이 없는 오케스트라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합주력을 자랑한다. 빈필하모닉, 베를린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바우 등 ‘세계 3강’으로 꼽히는 명문 오케스트라에 한국계 연주자들이 한자리씩 당당히 꿰차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엔 20대 젊은 연주자들이 잇달아 낭보를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규민(29)은 450여 년 역사의 독일 명문 오케스트라 베를린슈타츠카펠레의 종신 부악장으로 임명됐다. 1570년 창단한 이 악단은 베를린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다. 멘델스존,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카라얀 같은 거장들이 음악감독을 맡은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다. 현재는 명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악단을 이끌고 있다. 박규민은 지난해 12월 입단해 부악장으로 활동했고, 올해 10월 오케스트라 전 단원의 투표를 거쳐 종신 부악장이 됐다. 그는 베를린슈타츠카펠레 최초의 동양인 종신 악장인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과 함께 합을 맞추게 된다.
플루티스트 장여신(25)은 지난 5일 독일 만하임국립극장 오케스트라의 솔로 피콜로 종신 단원으로 임명됐다. 1779년 설립된 만하임국립극장의 상주악단으로 베버, 베를리오즈, 바그너 등 전설적인 작곡가들과 협업하며 높은 명성을 쌓은 오케스트라다. 장여신은 지난 1월 오디션에 합격해 단원으로 선발됐고, 4월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7개월간의 수습 기간을 거친 그는 이달 초 단원 투표를 통해 종신 단원으로 임용됐다. 만하임국립극장오케스트라의 목관 파트 단원으로 한국인이 선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엔 오보이스트 송현정(27)이 영국 버밍엄시립교향악단의 오보에 수석으로 발탁됐다. 버밍엄시립교향악단은 1920년 창단된 영국 최초의 공공자금 지원 오케스트라다. 사이먼 래틀, 안드리스 넬손스 등 유럽을 대표하는 명지휘자들의 손을 거치며 국제적 명성을 얻은 악단으로도 유명하다. 송현정은 2023년 말부터 악단 객원 수석을 맡았고, 오케스트라의 제안으로 이듬해 12월 특별 오디션을 치렀다. 이후 약 6개월간의 연수 기간을 거쳐 이 악단 오보에 종신 수석으로 임명됐다. 송현정은 이 악단에 입단한 최초의 한국인 연주자다.
9월엔 한국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해나 조(한국명 조수진·31)가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빈필하모닉의 정식 단원으로 임명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빈필하모닉이 한국계 연주자를 정식 단원으로 받아들인 건 1842년 창단 이후 처음이다. 이외에 3월엔 플루티스트 유채연(24)이 함부르크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종신 수석으로, 9월엔 하피스트 이우진(28)이 홍콩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하프 수석이 됐다.
해외에서 한국계 단원들이 늘어나는 건 세계 오케스트라의 다양성 강화 흐름과 한국 음악가들의 약진이 맞물린 결과다.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는 “과거 한국 연주자들은 콩쿠르에 주력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엔 콩쿠르 입상 자체보다 오케스트라 입단으로 얻는 경제적, 경험적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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