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LA) 국제공항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산업단지. 외관은 평범한 오피스 건물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축구장 1.3개 규모의 거대한 제조시설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이 하얗게 도색된 이 공간은 ‘포드식 위성 양산’을 목표로 설립된 스타트업 에이펙스스페이스의 생산시설 ‘팩토리원(Factory One)’이다.지난달 18일 방문한 팩토리원에서는 흰색 가운을 입은 엔지니어들이 워크스테이션 위에 놓인 황금빛 위성 버스(본체)에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을 결합하느라 분주했다. 연간 200대의 위성 버스를 생산할 수 있는 이 시설은 오는 7월까지 주문이 꽉 찼다.
에이펙스스페이스는 스페이스X가 촉발한 미국 우주산업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기업 중 하나다. LA 국제공항이 자리한 인구 1만7000여 명의 소도시 엘세군도에는 에이펙스스페이스를 비롯해 보잉, 록히드마틴 등 40여 개 우주항공 기업과 딥테크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다. 실리콘밸리가 소프트웨어 혁신의 중심지라면 엘세군도는 하드테크, 특히 우주·방산 제조의 요람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과 하드리안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이들은 과거 미국을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만든 ‘강한 공업력’을 첨단 기술로 재해석해 부활시키고 있다. 소프트웨어 영역에서도 미국의 독주는 더 뚜렷하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공개된 첨단 인공지능(AI) 모델의 65%가 미국산이고, 중국은 24%에 그쳤다. 이 같은 미국의 기술 독점 전략은 한국이 지향하는 ‘미들파워 허브’ 구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리콘밸리 한인 벤처캐피털 사제파트너스의 이기하 대표는 “미국이 주도하는 생태계에서 미국 기업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파트너로 자리 잡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하드웨어 버전…'뉴스페이스 수도' LA 엘세군도
각각 팰런티어와 스페이스X에서 일하던 이언 시나먼과 맥시밀리언 베나시는 이 간극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2022년 위성 제조 스타트업 에이펙스스페이스를 창업한 배경이다. 에이펙스스페이스는 설립 3년 만에 시리즈D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위성 발사 혁신에 이어 미국이 위성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엘세군도의 강점은 완결된 제조·발사 생태계다. 미국 우주군 우주체계사령부가 발주하면 보잉과 밀레니엄스페이스시스템스, 에이펙스스페이스 등의 기업이 위성체를 제작하고, 인근 호손에 제조시설을 둔 스페이스X가 이를 발사하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엡실론3는 발사체 운영체제(OS)를, 라디언트는 위성용 소형 원자로를 개발한다. 설계부터 제조, 발사, 운영까지 차로 15~20분 거리 안에서 해결하는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엘세군도는 20세기 초 항공산업의 태동지였고, 2차대전 당시에는 군용기 생산 기지로 ‘민주주의의 무기고’로 불렸다. 냉전기에는 비영리 연구기관 에어로스페이스코퍼레이션이 자리 잡으며 미·소 우주 경쟁의 연구개발(R&D) 거점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02년 스페이스X 창업 이후 이곳은 민간 주도의 우주 혁신이 응축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에 비해 유럽은 여전히 국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 모델에 머물고 있다. 유럽우주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혁신 기업이 시장의 판을 재편하는 동안 유럽은 이를 과소평가했다”며 느린 의사 결정과 고비용 프로그램 중심 생태계를 자성했다. 실제로 유럽 우주 스타트업이 공공 보조금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4개월로, 미국(11개월)의 두 배가 넘는다. 미국은 보조금 대신 국방·우주 조달 계약으로 명확한 수요를 제시하며 기업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이처럼 국가안보의 핵심 축이 된 우주산업의 제조업 기반을 확실히 다지고 있다. 조선·전자·반도체 등 핵심 제조업을 해외에 맡긴 선택이 전략적 취약성으로 돌아왔다는 반성이다. 미 의회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지난해 11월 연례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지배적 위치가 첨단 기술 분야로 확대되면서 미국 및 무역 파트너에 상당한 비용을 부과하고 미국의 정책 선택지를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페이스X는 엔진부터 발사체까지 공급망을 수직계열화했고, LA 제조 스타트업 하드리안은 우주항공 부품 분야의 ‘파운드리’로 성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행정명령을 통해 “상업 우주경제 육성은 고임금 항공우주 제조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주를 향한 미국의 전략은 분명하다. 다시는 제조업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중국 역시 2045년을 우주 굴기의 해로 선언했다. 랜드스페이스, 아이스페이스 등 ‘중국판 스페이스X’를 표방하는 기업들이 군·민 융합 전략에 따라 우주정책 총괄기관인 우주항천국의 지시에 따라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2022년 말 중국이 궤도에 띄운 우주정거장 ‘톈궁’에 대해 “핵심 부품과 기술이 100% 국산화(自主可控·자주가공)됐다”고 밝혔다. “핵심 기술은 구걸해서 얻을 수 없으며 반드시 자국 역량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개방된 공공재’이던 우주산업은 점차 ‘미·중 중심의 전략 자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양국 생태계에 편입되지 못한 국가와 기업은 발사 기회, 데이터 접근, 안보 프로젝트 참여에서 구조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주경제의 입구가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주산업은 이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기술·안보·제조 역량이 결합된 국가 경쟁력의 집약체”라며 “미·중이 우주 제조 생태계 구축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주라는 전 지구적 공공재의 주도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엘세군도=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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