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환기’. 2026년을 맞이하면서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신년사에서 올해 경영환경을 이렇게 정의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 지정학적 리스크, 인구 구조 변화, 내수 침체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산업의 문법까지 바꾸고 있어서다. 산업계는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기업 기(氣) 살리기’에 나서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빠르게 식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29일 매출 기준 상위 600대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95.4로, 2022년 4월 이후 46개월 연속 100을 밑돌았다. BSI가 기준치인 100보다 높으면 전월 대비 경기 전망이 긍정적이고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인 것을 의미한다. 46개월은 1975년 1월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장 기록이다. 제조업 세부 업종(10개)에서는 비금속 소재 및 제품(64.3), 금속 및 금속가공(85.2), 석유정제 및 화학(86.2), 전자 및 통신장비(88.9), 자동차 및 기타운송장비(94.1) 등 5개 업종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경협은 “건설과 철강 업황 악화로 관련 업종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며 “최근 반도체 가격 상승에 따른 전자·통신장비의 일시적 수요 둔화가 예상돼 전반적인 제조업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한화, HD현대, GS 등 주요 대기업의 올해 경영 화두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더 성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톱기업으로 도약하거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게 목표다. 국내 주요 그룹은 일제히 AI 내재화를 들고나왔다.
삼성전자는 반도체(DS)는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기술 근원적 경쟁력을 회복하고, 스마트폰, 가전 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디바이스 경험(DX) 부문은 하드웨어 혁신을 넘어 사용자 삶에 깊숙이 침투하는 ‘지능형 동반자’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파운드리 사업부도 2026년을 본격적인 도약기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의 올해 키워드는 AI 중심 성장과 재무 체력 회복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AI라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타고 도전에 나서자”고 강조했다. 그룹 전반의 투자·사업 포트폴리오가 AI 밸류체인(반도체-전력-인프라-서비스)으로 수렴하는 가운데 배터리·정유·건설 등 변동성이 큰 사업은 속도 조절과 구조 재편이 병행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신차 효과’를 앞세워 더 큰 도약을 준비한다. 미국 시장에서 지속되는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엔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인도에서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로 승부수를 띄워 점유율 확대를 노린다. 현대제철 등을 앞세워 미국에서 철강 사업을 안착시키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LG는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ABC(AI·바이오·클린테크)’ 사업에 속도를 낸다는 목표다. LG는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100조원 규모 국내 투자에 나선다고 밝혔는데, 이 중 약 50%인 50조원 이상을 미래 성장사업·신사업에 투입할 방침이다.
미국의 ‘마스가’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조선사를 보유한 한화와 HD현대는 미국에 생산거점 확대 등을 통해 조선업 르네상스를 노리고 있다. 특히 한화그룹의 성장 엔진(방위산업·조선·태양광)은 모두 미국과 동맹국 수요에 맞물려 있는 만큼 관세·규제·안보심사 등 변수를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HD현대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의 건설기계 회사들의 성공적인 통합을 올 한 해 과제로 삼았다.
석유화학 산업 재편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GS그룹은 AI를 통한 친환경 부문 신사업 발굴에 나서고, 중국의 철강 공습과 전기차 캐즘에 어려움을 겪는 포스코는 안전 투자를 강화하는 동시에 원가 개선과 판매 경쟁력 강화에 경영 방점을 두고 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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