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닛 옐런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4일(현지시간) Fed가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해 금리 인하 압박할 경우 Fed가 불필요한 통화 완화책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Fed에 금리 인하를 거세게 요구하는 가운데 전 Fed 의장으로서 Fed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취지로 한 발언이다.
옐런 전 의장은 이날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026 미국경제학회(AEA)’ 패널토론에서 이처럼 밝히며 “정부가 장기적으로 빚을 갚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책임은 Fed가 아니라, 세금과 지출을 결정하는 의회와 대통령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재정지배 가능성을 우려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예’이다”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보통 정부의 국채 금리도 함께 올라간다. 정부가 채권자에게 줘야 하는 이자 부담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특히 미국과 같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국채 발행량이 갈수록 증가할 경우 이 부담을 덜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려는 정부의 압박이 커지기 마련이다.
다만 옐런 전 의장은 현재가 재정지배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를 원하는 수준과 속도로 인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에 대한 해임 가능성을 재차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기준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는 약 38조 5678억 달러다. 매해 세입보다 세출이 커지면서 재정적자가 쌓였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부채의 대부분은 국채가 차지하고 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가 국채 발행에 따라 감당해야 하는 순이자 비용은 현재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2% 수준이며 향후 30년 동안 5.4%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본다. 또 재정 적자를 현행 GDP 대비 약 6%에서 3% 수준으로 줄이는 상당한 긴축 재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옐런 전 의장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면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거나 재정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이유로 행동이 제약될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는 고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계와 기업은 높은 부채를 관리하는 가장 쉬운 수단이 인플레이션이라고 인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금액의 빚이라도 실질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옐런 의장은 “일단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가 자리 잡으면, 물가를 다시 안정시키는 비용은 훨씬 커진다”며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통제되고 있을 때 Fed는 노동시장 약화에 대응할 여지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정지배에 따른 통화정책은 더 높고 변동성이 큰 인플레이션이나 정치적으로 왜곡된 경기 순환을 초래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옐런 의장은 대규모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과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예산 균형에 합의했던 사례를 들었다. 당시 두 사람은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단계적으로 줄여 2002년까지 균형예산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1998~2001년 미국 연방정부는 재정 흑자를 달성했고 GDP 대비 부채 비율도 하락했다.
옐런 의장은 “이러한 초당적 협력이 향후 수년 안에 나타나 미국을 지속 가능한 재정 경로로 되돌려놓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필라델피아=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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