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의 하마구치 류스케, <여행과 나날>의 미야케 쇼, <슈퍼 해피 포에버>의 이가라시 고헤이와 함께 일본의 유망한 젊은 감독으로 평가받는 오쿠야마 히로시의 <마이 선샤인>(이상 2025)은 피겨 스케이팅을 배경으로 관계의 굴절을 가장한 변화를 바라보는 학원 스포츠 성장물이다.

타쿠야(코시야마 케이타츠)는 여름엔 야구의 중견수, 겨울에는 아이스하키의 골리로 활동하지만, 이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는 듯하다. 공보다는 눈(雪)에, 하키 퍽보다는 얼음에 정신을 뺏기던 중 빙판 위에서 스파이럴을 도는 사쿠라(나카니시 키아라)를 보고 피겨 스케이팅의 매혹에 빠진다. 순간적인 움직임을 제외하면 별다른 발놀림이 필요하지 않은 중견수, 골리와 다르게 피겨 스케이트는 쉬지 않고 얼음을 지치며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게 환상적이어서다.
빙판 위에 선 사쿠라에게 햇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추니 친구들에게 별 인기 없는 다쿠야는 그 무대 위에 한 번 서보고 싶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사람. 코치 아라카와(이케마츠 소스케)는 사쿠라의 피겨 스케이팅을 관람하며 그저 좋아서 어설프게 따라 하는 타쿠야의 순수함에 그래 결심했어! 자네 피겨 스케이팅 할 생각 없나, 아이스 댄스 대회를 목표로 타쿠야와 사쿠라를 페어로 결성한다.


이것은 훈련인가, 놀이인가. 기본기가 탄탄한 사쿠라와 가르치는 족족 그 자리에서 척척 소화하는 타쿠야는 일과 일을 더해 삼이 되는 효과처럼 시너지를 발휘한다. 사쿠라에게 비쳤던 한 줄기 빛은 이제 타쿠야가 가세하면서 두 줄기, 세 줄기까지 늘어나 빙판 위에 반사된 빛의 향연으로 눈이 부시게 찬란하다.

이때 또 하나의 빛을 더하듯 드뷔시의 <달빛>이 상쾌하게 흘러나온다. 아무도 없는 밤의 거리를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의 이미지가 타쿠야와 사쿠라, 이들을 지도하는 아라카와까지 셋이 일구는 빙판 위의 작은 세계와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다만, 찬란해 보이는 이들의 현재에 드리운 밤에 뜨는 달의 빛이라니. 어딘가 불길하다… 기보다 미스터리하다.
관계는 늘 미스터리다. 영원할 것 같은데 금세 금이 가고,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언제 그랬냐는 듯 살살 녹고, 종잡을 수 없는 관계는 만남과 이별을, 집합과 해산을, 탄생과 해체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하며 안정과 불안을 오간다.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삶이 지닌 몇 안 되는 진실 중 하나다.
혼자일 때는 외로워 둘을 기대하고, 둘일 때는 보호막처럼 안정적인 삼각형의 세계를 구축해도 관계는 생각보다 단단하지 못하다. <마이 선샤인>이 학원 스포츠물의 전형을 넘어서는 건 이 지점에서다. 타쿠야, 사쿠라, 아라카와가 발 딛고 선 각자의 위치에서 관계의 변화를 바라보며 이를 성장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묘사로 보여주는 까닭이다.
싱글 선수라 외롭게 연습하는 사쿠라는 피겨 스케이트에 관심을 보이는 타쿠야에 눈이 간다. 말을 더듬고 잘하는 게 없어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한 타쿠야는 사쿠라와 함께 훈련하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연인 관계 때문에 외부에서는 늘 혼자였던 아라카와는 사쿠라와 타쿠야 콤비의 세계에 끼어들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함께하는 관계의 재미를 만끽한다. 셋 다 ‘싱글’에서 ‘페어’로 관계가 진화한 것이 기뻤다. 그야말로 햇빛 찬란한 나날이었다.

사쿠라가 아라카와의 비밀을 목격하면서 서로 힘이 되는 1+1=3의 관계에서 다시, 아니 그 전보다 더 외롭고 쓸쓸한 2-1=0 혹은 3-1=-1의 시간으로 옮겨온 셋의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계절은 순환해도 그 반복이 동일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아라카와는 잘 나가는 피겨 선수이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지 은퇴 후 (아마도 세상을 피해)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로 온 것 같은데 애인이 보기에 아라카와는 더 큰 물에서 헤엄쳐야 하는 인물이다. 아라카와는 애인과 이별해야 하는 또 다른 마이너스(-)의 관계를 맞이하지만, 더 큰 플러스(+)를 위해 떠나기로 한다.
사쿠라는 페어의 관계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돌아간 타쿠야와 서먹해지기는 했어도 그 과정에서 겪은 상실과 아픔의 경험이 다시 싱글 피겨로 펼치게 될 감정 연기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봄의 길목에서 사쿠라와 맞닥뜨린 타쿠야가 한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걸 보니 각자의 길을 가든, 다시 페어가 되든 자신의 삶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보인다. 봄이 오면 겨울이 뒤따르고, 겨울이 끝나면 봄이 그 자리를 대신하듯, 햇빛이 있으면 달빛이 있고, 달이 지면 해가 찾아오듯, 이제 더는 1+1=2이거나 2-1=1이 아닌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