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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갇힌 세계에서 누벨바그를! "다시, 네 멋대로 하라"

입력 2026-01-07 10:19   수정 2026-01-07 14:00

국내에서도 비교적 인기가 높은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등 3부작)는 늘 재기발랄한 작품을 만든다. 지난 2025년 12월 31일에 개봉된 그의 신작 <누벨바그>는 영화가 사실은 시대적 명민함과 ‘똘똘함’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명랑하지만, 따분하고 의도적으로 철학적이며 그래서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가도(특히 신세대 관객들에게) 어느새 저절로, 지금 세상의 수많은 관습과 규칙, 기괴하고 모순된 시스템을 바꾸자는 얘기라는 걸 알게 한다. 이 영화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 개안(開眼)하는 것, 말 그대로 기성에서 벗어나 반항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하여 그 같은 행위를 가리켜 우리는 지금까지 누벨바그(Nouvelle Vague)라 불렀다.

사실 영화 <누벨바그>는 장 뤽 고다르에 관한 얘기이다. 장 뤽 고다르가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를 정말 ‘제멋대로’ 찍어 가는 제작 현장에 관한 얘기이다. 그러니까 제목은 ‘네 멋대로 해라, 의 기록’이나 아니면 ‘고다르’였어야 의미와 맥락상 맞다. 그런데 링클레이터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점프컷을 시도한다. 점프컷은 누벨바그 영화의 특징 중 하나이다. 서사를 뛰어넘어(생략하고) 장면과 장면을 이어 붙인다. 서로 충돌하는 듯 의미 전달의 효과가 분명해지고 감정의 연결이 한층 정교해진다. 이 영화는 고다르에 관한 얘기인 척, 영화 <네 멋대로 해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한 얘기인 척, 제목을 갑자기 누벨바그로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영화 시대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더 나아가 지금의 세상에 그 어떤 혁명적 변화가 요구되는지 번뜩 주제 의식을 갖게 만든다.



누벨바그가 1951년 앙드레 바쟁 등이 창간한 <카이에 뒤 시네마>(영화 공책, 영화 노트란 뜻이다. 국내에서는 ‘영화 저널’로 이름 붙여 왔다) 소속 평론가들에 의해 주창됐고, 그 필자들의 수와 그 면면이 만만치 않았던 만큼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는 다분히 고전적인 기법으로 오프닝 시퀀스에 각 인물을 나열하듯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가 어떤 전개 방식을 갖게 될지를 암시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극장에서 영화의 엔딩 씬이 나오고 담배를 피우면서 이를 보고 있는 장 뤽 고다르(기욤 마르벡)와 프랑수아 트뤼포(아드리앵 루이야르), 역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 수잔 쉬프만(조디 루스 포레스트), 그리고 영화감독 클로드 샤브롤(앙투안 베송)의 정면 원 샷을 차례차례 보여준다.




영화를 본 이들은 극장 안에 남아 잡담을 나눈다. 고다르가 “확실해졌어. 모든 문명은 망해”라고 말하자 나머지 셋이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영화도!” 아마도 영화 시사회에 같이 온 것으로 보인다. 쉬프만이 “그래도 공짜 술을 주니까”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애프터 파티가 열리는 모양이다. 고다르는 거기서 영화 제작자이자 일명 보보로 불리는 조르주 드 보르가르(브루노 드뤼이퓌스트)를 만나 방금 본 영화 <악마의 고개>(이건 아마 가상의 제목으로 보인다)에 대해 역겹다는 표현을 쓴다. 고다르는 보르가르에게 “영화 <악마의 고개>는 좋지 않다기보다 나쁜 영화에 가깝다”라는 자기 평론의 핵심을 말해 준다. 고다르는 곧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부에 앉아 자크 리베트(조나스 마미), 에릭 로메르(코메 튈랭)와 트뤼포의 새 영화 <400번의 구타>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당시 장 뤽 고다르는 몸이 달아 있었다. 쉬프만에게 자기의 묘비명은 ‘흐름을 놓치다’가 될 것이라며 보보에게 “최고의 영화 평론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링클레이터의 영화 <누벨바그>는 도입부에 1960년대의 영화 이론가들, 감독들, 평론가들을 죽 나열해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이 작품이 어떤 아우라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암시한다. 이 영화의 초입부는 그래서 상당히 중요하다. 누벨바그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분위기는 어땠으며, 그렇게 되기까지의 철학적, 영화적 당위는 무엇이었고, 그리하여 그 주체들(앙팡테리블로 불리던 일군의 반항적 젊은 지식인들)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보여 준다.

고다르는 트뤼포나 샤브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것에 조바심 낸다. 고다르는 영화제가 열리는 칸의 해변에서 만난 제작자 보보에게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의 투자를 약속받는다. 장폴 벨몽도(오브리 뒬랭)와 진 세버그(조이 도이치)가 캐스팅된다. 이때부터 <네 멋대로 해라>의 난장판 제작이 시작된다. 이렇다 할 대본도 없다. 콘티도 없다. 삼각대도 없이 카메라를 들고 찍는다. 인물들이 종종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대사를 한다. 애드리브가 넘친다. 서사의 앞뒤를 의도적으로 맞지 않게 구성한다. 곧 ‘컨티뉴이티’가 없다. <네 멋대로 해라>가 만들어 낸 새로운 영화 혁명의 시작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감독의 난장판 연출이었다.



<네 멋대로 해라>가 만들어진 1960년은 카스트로가 쿠바 공산화에 성공한 이듬해이다.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베트남에서는 호찌민 공산 북군의 남쪽으로의 파상공세가 이루어진 때였다. 미국이 베트남전 개입 여부를 놓고 한참 저울질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러다 미국 린든 B. 존슨 정부는 결국 통킹만 사건(1964년)을 일으키고 내전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1955년에 발발한 베트남 전쟁은 이후 1975년까지 무려 20년간 세계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지금의 러-우 전쟁 그리고 바로 얼마 전 벌어진 미국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1960년의 ‘불길한’ 시대상과 실로 ‘불길하게도’ 닮아있다.

프랑스의 앙팡테리블들은 그런 세계를 향해 누벨바그의 깃발을 앞세우며 세상을 고전적 사고의 테두리에서 해석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세상을 바꾸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벨바그가 1960년대를 바꿨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세계관에 새로운 불꽃을 당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프랑스 68혁명은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폐관에 항의하는 시위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누벨바그를 키워낸 시네마테크 원장 앙리 랑글루아에 대한 강제 해임이 도화선이 됐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누벨바그>는 지금과 같은 무의미하고 무지몽매한 세계계급 전쟁의 시대에 누벨바그 정신의 복구, 새로운 누벨바그 시대가 도래해야 한다는 꿈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외형적인 한편으로 고다르와 트뤼포 등이 원했던 것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장르영화의 복사판이 프랑스에서 범람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가주의 영화들을 발굴하기 시작했고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한국의 영화가 위기 국면이라며 외치고들 있지만 그건 상업영화의 위기일 뿐이다. 상업영화, 할리우드식 복제판의 장르영화들이 미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1950~60년대 누벨바그의 선구자들이 목 아프게 반복해서 한 얘기이다. 그 실체를 할리우드의 작가주의형 감독인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만든 것이 아이러니일 뿐이다.

정작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가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영화 <누벨바그>에서의 좌충우돌 제작 과정을 보고 원본인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면 매우 특이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네 멋대로 해라>의 해설서인 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네 멋대로 해’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성의 회복을 깨닫는 것이다. 영화도 내 생각대로, 이념도 내 선택대로, 다양한 삶의 조건들 역시 내 뜻대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세상은 진정으로 정신적이면서 물질적으로 고양될 것이다. 그 같은 사상의 회복이 이 영화가 진정 원하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규격화 시스템화 획일화의 프레임에 갇히고 있다. 영화는 의지와 정신의 산물이지 물질과 자본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모토라고 링클레이터는 말하고 있다. 이 영화 <누벨바그>가 이 시대의 누벨바그(새로운 물결)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 영화의 상영이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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