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을 상대로 유례없는 강공을 펼치고 있다. 지난 연말 국회 청문회에서 나온 ‘영업정지’ 가능성 시사는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공정위 내부에서는 처분에 따른 법적·정치적 후폭풍과 통상 마찰 가능성을 두고 고민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시장 질서 확립이라는 명분과 민생 불편·국익 저해라는 실익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모습이라는 분석이다.
정부 내부의 쿠팡에 대한 기류는 매우 격양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이 그동안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을 이용한 부당행위가 적지 않았고, 이번 개인정보 보호 실패 이후에도 한국 정부와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꺼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카드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이라는 분석이다.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면 사익편취 규제 등 각종 공정법 관련 규율을 받게 된다.
공정위는 2021년 김 의장이 미국 국적자라는 점과 '친족의 경영 비참여'를 근거로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최근 김 의장의 친동생인 김유석 부사장이 2021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본사로부터 약 120억 원 상당의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정위 안팎에서 점차 “국내 법인 지분은 없더라도 미국 본사의 지분과 경영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면, 이를 실질적인 경영 참여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부사장이 고액의 보수와 주식을 챙긴 것이 확인된 만큼, 기존의 동일인 지정에 예외가 될 요건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경우, 미국 정부가 '최혜국 대우(MFN)' 위반을 주장하며 통상 분쟁을 걸어올 가능성도 있다. '미국인 투자자에게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항의해온다면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공정위가 선뜻 칼을 뽑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영업정지 역시 소비자 불편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33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안은 엄중하지만, 실제 영업정지를 단행했을 때의 파장도 생각해야해서다.
하루아침에 전국의 ‘로켓배송’이 멈출 경우 발생할 수백만 소비자의 불편은 고스란히 정부를 향한 비판으로 전이될 수 있다. 쿠팡에 생계를 의존하는 수만 명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자금줄이 막히고, 쿠팡 배송 종사자에게는 '탈팡'은 일자리를 잃는 문제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 또는 다수 중소 사업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영업정지에 갈음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돼있다"며 "과징금으로 대체하더라도 영업정지 요건 자체는 충족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때문에 전면 영업정지보다는 신규 회원 모집 제한이나 일부 서비스 정지 등 제한적인 방안이 고려돼야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영업정지와 그에 준하는 제재가 이뤄지더라도 쿠팡이 사법부로 향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영업정지는) 법 체계와 요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한다"고 말했다.
국민적 공분이 큰 사건임에도 쿠팡이 '저자세' 대신 '버티기'에 돌입한 이유는 미국 시장의 리스크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증시 상장사인 쿠팡Inc는 한국에서의 법 위반 인정을 곧 미국에서의 ‘사망 선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공정위가 부당 행위나 소비자 기만을 확정 지을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정밀 조사와 더불어 주주들의 천문학적인 '집단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공정법 전문가는 "미국 법정에서 '한국 정부도 인정한 사실' 등의 증거가 채택될 수 있어 끝까지 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쿠팡이 초기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실관계를 밝혔으면 이 정도로 논란이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쿠팡이 지금이라도 후속 조치를 해야 공정위 등 규제 당국에도 명분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훈/하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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