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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톤짜리 ‘루시’가 던진 질문, 느낌표를 건네는 최재은의 예술

입력 2026-01-09 09:10   수정 2026-01-09 11:25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 이 메시지는 작품을 보자마자 알아챌 만큼 직접적이기도, 몇 번을 봐도 머리 위에 물음표가 가시지 않을 만큼 모호하기도 하다. 최재은 작가는 관람객에게 물음표보다는 느낌표를 전하는 작가다. 작품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일관되게 드러내 왔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최재은 작가의 개인전 ‘최재은: 약속(Where Beings Be)’은 작가의 주요 작업을 비롯한 신작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첫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대표 작품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 세계를 심도 깊게 조망한다. 조각부터 영상, 설치, 건축까지 매체를 가지지 않고 생명과 자연의 관계를 이야기해 온 작가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작품 활동은 1975년 일본 소게츠 아트센터에서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작가는 이 시기를 “위대한 문명을 발견한 순간과도 같았다”고 회상한다. 일본의 전통 꽃꽂이 예술 이케바나를 현대적으로 풀이한 데시가하라 소후(勅使河原蒼風)와 그의 아들이자 영화감독 데시가하라 히로시(勅使河原宏)로부터 사사받았으며, 히로시 감독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며 연출과 공간 예술에 대한 개념을 익혔다.



2001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작가는 당시의 경험이 비무장지대를 예술적 공간으로 재해석한 DMZ 프로젝트 ‘대지의 꿈’을 완성하는 단초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백남준, 오노 요코, 존 케이지 등 세계적인 전위 예술가가 모여 교류하던 소게츠 아트센터에서 작가는 이케바나, 영화, 공간, 현대 미술 등으로 시야를 넓혀가며 훗날 펼쳐나갈 작품세계의 첫 장을 써 내려갔다.

자연은 최재은 작가의 화업을 관통하는 주제다. 이번 전시에서는 ‘루시’, ‘경종(警鐘)’, ‘소우주’, ‘미명(微名)’, ‘자연국가’라는 5개의 소주제를 통해 작가가 시적으로 표현한 자연과 생명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약 320만 년 전의 화석, 백화한 산호, 높아지는 해수면, 일상에서 마주한 들꽃과 들풀 등을 통해 인류의 기원부터 현재 사회가 맞닥뜨린 생태 위기까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작가의 주요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아카이브도 함께 소개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것은 3m 높이의 설치 작품 ‘루시’. 이 작품은 1974년 발견 당시 최초의 인류로 추정된 화석 ‘루시’의 골반 형태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히말라야산 한백옥돌을 벌집 모양으로 자른 조각을 이어붙였다. 세포의 완전한 형태로도 볼 수 있는 육각형의 조각들이 네 개의 뼈대가 돼 역삼각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규모의 이 작품은 뼈대 하나당 무게만 해도 1.1t이다. 네 개의 뼈대와 좌대 등까지 합치면 루시의 총 무게는 약 5톤이 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울시립미술관 이승아 학예연구사는 이 작품을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동시에 가장 애를 먹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크레인이 들어올 수 없는 미술관으로 운반하기 위해 숙련된 전문가들이 작품을 직접 날났고, 자작나무로 만든 루시의 집 형태가 온전히 바로설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고생을 많이 해 관람객 앞에 선보이게 된만큼 자세히 오래도록 들여다봐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상아빛의 루시를 지나고 들어서게 되는 ‘경종(警鐘)’ 섹션은 직전 공간과 대비되는 암흑이 펼쳐진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 위로 높아지는 해수면 온도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리얼타임 영상이 상영되고, 중앙에 위치한 백화한 산호가 희미하게 빛을 밝힌다. 오키나와 해수의 이상고온으로 화려한 빛깔을 잃고 하얗게 탈색돼 뼈대만 남은 산호들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앞으로 닥쳐올 예측 불가능한 자연환경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자연과 함께 만든 작품들도 소개된다. 작가는 일명 대지가 그린 그림을 통해 전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다. 경주 토함산 자락을 시작으로 일본,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에 걸쳐 진행된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World Underground Project)’다. 이 작업은 특수 제작한 종이를 여러 지역의 토양에 묻은 후 일정 시간이 흐른 뒤 꺼내며 형성된 문양(드로잉)을 고착시킨 것이다. ‘소우주’ 공간에서는 일본 북서쪽 가루이자와(?井?) 숲속에서 진행된 1991?992년 작업을 소개한다. 벽의 작은 구멍을 통해 작품의 담긴 미생물의 움직임도 확인할 수 있다.




최대 삼백만년 전부터 지구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들풀과 들꽃도 전시장 한켠을 차지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바라기와 산수유, 애플민트부터 이름도 생소한 알리움 스파에로세팔론, 점백이천남성, 필라델푸스 사츠미 등 작가가 터를 잡고 있는 일본 교토 인근에서 만난 560종 식물을 압화해 각자의 이름과 쓰임새, 역사를 소개한다. 식물의 주권을 찾아주자는 명목 하에 조성된 이 공간은 ‘미명’이라 이름 붙었지만, 장영규 음악감독과 협업한 멸종된 식물 종의 이름을 부르는 ‘이름 부르기(To Cal by Name)’ 음향 설치 작업을 통해 다시금 이름을 얻고 기억된다.



이밖에도 DMZ 철조망을 녹여 만든 ‘증오는 눈처럼 녹는다(Hatred Melts Like Snow)’와 2014년 시작한 DMZ 프로젝트 ‘대지의 꿈’과 ‘자연국가’의 로드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이사무 노구치의 작업실에서 만든 작품 루시의 프로토타입과 삼성서울병원에 설치된 모형 ‘시간의 모형’,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기’, 1993년 열린 ‘그랜드 티 세리머니(Grand Tea Ceremony)’에서 선보인 삼각형 구조의 다실 ‘즈레’ 등 작가의 예술적 여정에 굵직한 이정표를 남긴 프로젝트를 실물 대비 1:8~1:40 비율로 축소한 모형도 함께 소개된다. 전시는 4월 5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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