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로 꼽히는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토르텐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상대적으로 강한 미국 경제로 달러 대비 원화 약세 현상은 단기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글로벌 국가들의 인공지능(AI) 도입 속도와 지속성과 관련한 민감도도 그만큼 커졌다는 점은 리스크로 평가했다.
슬록은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처럼 밝혔다. 덴마크 출신인 슬록은 복잡한 경제 지표를 한 장의 직관적인 차트로 풀어내는 ‘데일리 스파크’ 리포트를 통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의 분석은 단순한 이론을 넘어 방대한 미시 데이터를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월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다. 예상보다 강한 미국 경제성장으로 금리인하가 지연될 것이라고 예측한 점도 그에 대한 월가의 신뢰를 더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 속에서도 미국 중앙은행(Fed)이 올해 정책 운용을 신중하게 할 수 있을까요.
“Fed는 신중함을 시사할 수는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시장이 Fed의 반응 함수(reaction function)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3%에 근접해 있고,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금융 여건은 이미 상당히 완화된 상태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Fed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입니다.”
▶그럼에도 일부 Fed 위원들은 빠른 속도의 금리 인하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만약 Fed가 더 빠른 속도의 금리 인하에 나선다면, 인플레이션 리스크와 (장기 국채에 대한) 기간 프리미엄이 재평가되면서 장기 금리가 상승해 수익률 곡선이 더 가팔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Fed는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올라가고 인플레이션은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가능성은 있지만 매우 좁은(가능성이 낮은) 경로입니다. 현재 인플레이션의 약 3분의 2는 공급 요인이 아니라 수요에 의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재정 부양 효과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AI 투자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 둔화 없이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2%로 내려오는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Fed 내부에서 매파와 비둘기파 간의 견해 차이가 뚜렷해졌습니다.
“이 분열은 위원회 내부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견이 확대될수록 (Fed 발언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포워드 가이던스의 효과는 약해지고, 시장은 회의마다 더 큰 변동성을 가격에 반영하게 됩니다.”
▶Fed 정책에 따른 시장 변동성이 가장 큰 위험인가요.
“진짜 위험은 의견 차이 그 자체가 아니라, 정책이 인플레이션의 기초 여건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실제 물가 상황보다 정치·시장 압력에 휘둘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조짐은 가장 먼저 장기 금리 구간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노동시장은 식고 있습니다. 현재의 둔화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계십니까.
“노동시장은 둔화하고 있지만 경기침체적인 악화 국면은 아닙니다.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실업률도 다소 상승했지만, 과거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완전고용에 부합하는 수준입니다. 관건은 AI 도입이 생산성 향상이나 노동 대체로 얼마나 빠르게 이어질지인데, 이는 아직 거시 지표에 뚜렷하게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채 수익률 곡선의 역전이 해소되며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이번 스티프닝은 과거 사이클과 다릅니다. 단기 금리는 하락하고 있지만 장기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경기침체 임박보다는 재정 공급 확대, 기간 프리미엄,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지는 것은 성장 붕괴 신호라기보다, (미국 경제·재정) 정책 신뢰도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AI 투자 사이클이 거품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I 투자는 이제 거시경제의 핵심 동력이 됐고,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는 현금흐름 대비 역사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상당 부분이 현금으로 집행되고 있어 단기적인 금융 안정성 리스크는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기대가 실제 이익 창출 규모보다 큰 경우 거시적 리스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 전반이 AI의 강세 지속에 더 크게 노출돼 있으며, 이는 판단이 틀렸을 때의 비용을 높이고 있습니다. (경제와 시장이 AI 성공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어, AI 성장 스토리가 흔들릴 경우 주식·투자·경기에 미치는 충격이 과거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26년 투자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리스크는 무엇인가요.
“핵심은 (각 요인의) 상호작용 효과입니다. 재정 정책은 여전히 확장적이고, 인플레이션은 3% 부근에서 끈적거리며 유지되고 있어 금리는 더 오랫동안 높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큽니다. 동시에 시장은 AI 관련 성장 스토리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습니다. 이 내러티브에 변화가 생길 경우 주식, 신용시장, 자본 흐름 전반에 걸쳐 과도한 충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올해 원화 약세는 구조적 흐름입니까, 일시적 현상입니까.
“주로 글로벌 격차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미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더 강했고, 인플레이션은 유럽보다 높으며, 금리는 더 오랫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요인들이 달러 강세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성장률이 수렴하고 금리 차이가 좁혀지면 환율 압력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여전히 달러 강세에 유리한 거시 환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AI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에 동의하나요.
“우리는 무역전쟁에 따른 둔화 국면에서 벗어나, 재정 부양과 AI 관련 투자가 본격화되는 보다 우호적인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AI는 제조업 사이클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산업 회복이 아니라, 연산 능력,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에 자본 지출이 집중되는 구조입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이지만, AI 도입 속도와 지속성에 대한 민감도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