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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강국 네덜란드의 자기진단…"ASML만 바라봐선 안돼" [강경주의 테크X]

입력 2026-01-15 07:00   수정 2026-01-15 07:06


"네덜란드도 ASML만 바라봐선 안됩니다. 벤처캐피털(VC)을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 혁신의 출발입니다."

유럽의 4대 연구기관 중 하나인 네덜란드국립응용과학연구기구(TNO)의 차크 친아소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네덜란드와 유럽이 ASML같은 대기업의 성공에 취해있다면 패권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란 진단이다. 그는 "1970년대 이전까지는 대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서도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VC라는 혁신 시스템이 나타나면서 경제 패권의 무게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그는 VC가 창업가에게 투자하고, 스타트업들이 빅테크로 도약하는 구조가 지금의 미국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테슬라, 스페이스X, 엔비디아 같은 기업들 모두 대기업의 스핀오프가 아니라 투자를 받은 창업가의 혁신에서 출발했다고 VC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친아소이 CEO는 "미국은 '괴짜'와 '이단아'를 존중하는 문화 덕분에 혁신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며 "유럽처럼 지나치게 규범적이고 위험을 회피적인 사회에서는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고 유럽의 위기를 짚었다.

그는 "일반 기업은 실패를 감당하기 어렵지만 벤처캐피털은 100개 중 5개만 성공해도 나머지 실패를 모두 덮을 수 있는 구조인데 유럽은 VC 생태계가 너무 취약하다"며 "연기금 같은 대형 자금이 VC로 거의 흘러가지 않는 것이 유럽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친아소이 CEO는 한국과 네덜란드, 유럽 전체가 여전히 VC보다 '대기업 중심 R&D' 구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짚었다. 친아소이 CEO는 "미국은 VC가 주도하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발하고, 중국은 그 문화를 받아들여 '미국보다 더 미국다운' 창업 문화를 꽃피웠다"며 "한국과 네덜란드는 대기업을 성공적으로 키웠지만 앞으로는 삼성이나 ASML만 바라봐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미국식의 VC 투자 모델을 활성화시켜 대기업 생태계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스케일업 생태계 육성이 미래 패권 선점에서 중요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친아소이 CEO는 "미국 빅테크들과 실리콘밸리의 VC 생태계는 일반적인 한 개 국가 전체보다 더 많은 자금을 R&D에 쏟아붓는다"며 "네덜란드 전체 R&D 지출은 연간 약 240억 달러 수준이지만 아마존은 혼자서 연간 850억 달러 이상을 R&D에 투자한다"고 짚었다. VC의 투자를 받아 성장한 개별 기업의 R&D 규모가 국가 단위를 넘어선 시대가 됐다는 설명이다.

친아소이 CEO는 "바로 이 지점이 지금 TNO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TNO는 직접 스핀아웃 회사를 만들고, 외부 스타트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데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TNO는 약 50개 이상의 기업을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회사를 스케일업시켰다. TNO의 역할을 기초과학과 시장을 연결하는 '오케스트레이터'로 규정한 그는 "TNO는 민간 기업과 대학, 정부를 삼각구조로 묶고 그 한가운데에서 혁신을 조율한다"며 "초기에는 컨소시엄 방식으로 함께 연구하고 기술 성숙도가 높아지면 스핀오프 회사로 분사시키는데, 이때 항상 VC와 함께 간다"고 강조했다.

어느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포토닉스가 가장 먼저 나왔다. 친아소이 CEO는 "TNO는 에인트호번에 인듐 인산화물(InP) 기반 포토닉스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지었다"며 "포토닉스와 첨단 패키징, 퀀텀, 반도체용 신소재 등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방산 분야와 6세대 이동통신도 주요 연구 분야라고 언급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해 유럽에서 방산 연구가 폭발적으로 확대됐다"며 "스마트제조의 필수 인프라인 6G도 연구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덴하그=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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