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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생활비 잡기’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주택, 금융, 에너지 분야에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추락하자 조기 선거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신용카드 이자율을 제한하거나 기관투자가의 단독주택 매입을 금지하는 등 시장 원리를 훼손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지율 하락에 ‘물가 카드’
13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선 금융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비자, 마스터카드, JP모간 등 주요 카드사와 은행 주가가 3~4% 넘게 급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용카드 이자율 상단을 연 최대 10%로 제한하는 방안을 20일부터 도입하겠다고 예고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미국의 신용카드 평균 이자율은 연 20.97%다.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4년 이후 10% 아래로 내려간 적은 한 차례도 없다.미국 최대 은행 JP모간의 제러미 바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지 근거가 약한 지침이 부당하게 우리 사업을 크게 바꾼다면 모든 방안이 검토 대상이 될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신용카드 금리 상한이 도입되면 신용도가 낮은 가계와 소상공인의 신용 접근성이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 10% 이상 금리를 못 받는 카드사 등이 저소득층에 신용카드 발급 자체를 꺼릴 것이고,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은 오히려 은행이나 카드사 밖에서 고금리 ‘초단기 소액대출’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관투자가의 단독주택 매입도 제한하겠다고 했다. 주택 수요를 줄여 주택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SNS를 통해 “사람들은 기업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사는 것”이라며 의회에 관련 법제화를 촉구했다. 미국 주택 가격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약 55%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원인으로 대형 투자회사의 주택 매입 확대를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대형 투자자의 주택 매입은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감소세를 나타냈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대형 투자자의 주택 매입 비중은 2024년 기준 21.7%로 2007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작년엔 상반기 기준 20% 아래로 떨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정부 보증 주택금융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2000억달러(약 295조원) 규모 주택담보대출채권(MBS)을 매입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통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가 지난달 성인 14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생활비가 ‘매우 감당하기 어렵다’거나 ‘전혀 감당할 수 없다’고 답했다. 마리스트가 해당 질문을 시작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시장 처방에 시장에서 ‘경고음’
미국 중앙은행(Fed)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의 압박도 체감물가 잡기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 법무부는 9일 Fed 청사 리모델링 사업과 관련해 제롬 파월 Fed 의장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연 3.75%(상단 기준)인 기준금리를 연 1% 아래로 낮추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1년 뒤 어느 수준의 금리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연) 1%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낮게”라고 답했다. 그러나 Fed가 지난달 공개한 점도표(Fed 위원들의 금리 예상치)에 따르면 연말 기준금리 예상치는 연 3.4%다. 시장에선 Fed에 대한 행정부의 정치적 압박이 지속될 경우 정책 신뢰도가 훼손돼 경제 운영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기름값을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베네수엘라 원유산업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내놓고 있다. 이 역시 미국 원유업계에는 달갑지 않은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적·정치적 리스크가 존재하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부텍사스원유(WTI) 배럴당 50달러 수준은 손익분기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보다 더 하락할 경우 수익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장기적인 저유가 국면은 미국 원유산업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활용해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1인당 2000달러를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 정책이다.
◇‘생활비’, 중간선거 최대 변수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정책을 쏟아내는 건 중간선거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지표상 물가는 2%대 중후반으로 비교적 안정돼 있지만 실생활에서 느끼는 체감물가가 높다는 게 문제다. 민주당은 ‘감당 가능한 생활비’(affordability)를 핵심 선거 구호로 내세우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민주당이 만들어낸 가짜 용어”라고 일축해 왔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2기 전체를 통틀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중간선거를 앞두고 생활비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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