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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파는' 대체 불가 한국 제품들…美도 꼼짝 못 한다

입력 2026-01-15 17:42   수정 2026-01-16 01:46


HD현대일렉트릭이 내년부터 18~20%에 달하는 변압기 대미 관세를 제품 가격에 전액 반영하기로 했다. 통상 가격 인상 요인이 생기면 수출기업과 수입기업이 비용을 분담하지만, ‘인공지능(AI) 붐’으로 변압기 수요가 폭증하자 미국 수입업체에 모두 지우기로 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빅테크에 공급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메모리반도체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졌다. 변압기와 반도체가 ‘없어서 못 파는’ 대체 불가능한 제품으로 떠오르면서 ‘관세 무풍지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김영기 HD현대일렉트릭 사장은 전날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연 비공개 간담회에서 “내년부터 미국에 수출할 때 붙는 변압기 관세를 전액 제품 판매 가격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HD현대일렉트릭 변압기를 수입한 미국 전력 기업은 관세 비용의 84%를 부담했고, 올해는 더 많은 관세 비용을 책임질 예정이다.

국내에서 제조한 변압기를 미국에 수출하면 상호관세(15%)에 더해 철강 제품 사용에 따른 파생상품 관세(3~5%)를 추가로 내야 한다. HD현대를 비롯해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국내 변압기 3사는 미국의 노후 송전망 교체와 AI 붐에 따른 신규 송전망 구축 수요에 힘입어 5년 치 이상 일감을 확보했다. 효성과 LS도 ‘공급자 우위 시장’을 앞세워 관세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삼성과 SK가 생산하는 HBM 등 고성능 D램과 낸드플래시도 미국 품목관세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품목관세 포고문을 통해 “미국에서 중국에 수출하는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면서도 “미국 내 공급망이나 제조 역량 강화에 기여할 경우 제외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가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핵심 재료로 쓰인다. 업계에서는 공급 부족 여파로 가격이 급등한 메모리 반도체에 관세까지 물리면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관세 예외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로 꼽았다.
"K변압기 받으려면 5년 기다려야"…공급부족이 만든 '관세 무풍지대'
美노후 변압기 교체·AI붐 겹쳐, 수요 엄청난데 품귀현상 이어져
변압기 시장은 2년 전부터 공급자 우위 시장이 됐다. 노후 송전망 교체 수요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신설 등이 겹쳐 변압기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는 아니다. 수작업으로 생산해 숙련공이 여럿 필요한 데다 납품 실적과 품질 인증도 까다로워서다. 글로벌 시장 강자인 GE버노바와 독일 지멘스에너지 등이 전력 인프라가 부족한 미국에 제대로 된 공장을 두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의 상황은 다르다. 최신 기술이 필요한 765킬로볼트(㎸) 초고압 변압기 등을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에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후 전력망에 AI 붐으로 수요↑
글로벌 변압기 품귀 현상에 K변압기 회사들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단순히 주문을 받아 납품하는 ‘을(乙)’이 아니라 고객사를 선별해 받는 ‘갑(甲)’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도 변압기 관세(18~20%)를 모두 고객사에 부담시킨다는 자신감의 배경에는 변압기 시장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 전력망 노후화다. 15일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 전역 변압기의 약 70%는 2000년 전후 설치됐다. 변압기의 평균 수명은 30년 안팎이다. 향후 수년 안에 대규모 교체 수요가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발전소·변전소에 설치되는 변압기 등은 전압을 높이거나 낮춰 전기를 효율적으로 송전·배전하는 핵심 설비다.

AI 붐도 변압기 품귀를 부추기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데이터센터에 수백조원씩 투입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변압기와 배전반, 개폐기 등 전력기기가 집약적으로 들어가는 시설이다. 2028년 미국 전체 전력 소비에서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신규 투자액 3402억달러(약 500조원) 가운데 45%(약 225조원)가 미국에서 집행됐다. 업계에선 데이터센터 투자에서 전력 인프라 비중을 8% 안팎으로 잡는다. 미국 시장에서만 수십조원의 전력기기 신규 수요가 생긴다는 계산이다.

재생에너지 설치 증가도 수요를 떠받친다. 태양광·풍력은 전력 생산이 일정치 않아 이를 저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태양광은 낮에 생산한 전기를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했다가 송전망에 흘려보낸다. 원거리 수요처로 보내기 위해 전압을 올리고 내리는 과정에서 변압기·배전반 등 변전 설비가 필요하다. 발전 설비 증설 못지않게 전기를 실어 나를 송·변전 인프라 확충이 중요해지면서 전력기기 발주가 구조적으로 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영업이익률 25%도 가능
수요는 늘지만 공급은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게 변압기 시장의 특성이다. 수작업이 필요한 공정이 많지만 숙련공을 키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장을 증설하더라도 인력 양성, 품질 인증, 현장 납품 경험이 쌓여야 생산능력이 정상 궤도에 오른다. 중국 변압기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다.

김영기 HD현대일렉트릭 사장은 “초고압 변압기 전 공정을 다룰 수 있는 생산직은 전문성을 키우는 데 10년 이상이 걸린다”며 “공장을 짓는다고 곧바로 생산능력이 늘어나는 산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내년 7월 증설을 마칠 미국 앨라배마 공장도 최대 가동 수준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발주처는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납기와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공급사를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관세 부담이 줄면서 한국 변압기 3사의 영업이익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매출 4조583억원, 영업이익 9529억원을 올렸을 것으로 증권사들은 보고 있다. 영업이익률 역시 23.5%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관세 부담이 사라지는 2027년부터는 영업이익률 25%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진원/김우섭/김채연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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