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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트로피 신드롬…왜 한국의 혁신은 무대에서 멈추는가 [더 머니이스트-데이비드김의 블라인드 스팟]

입력 2026-01-19 06:30  



"더 많은 상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더 많은 고객이 필요합니다.(You don't need more awards. You need more customers.)"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 현장에서 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가 한국 스타트업 부스를 둘러본 뒤 남긴 말이다. 한국 스타트업관에서만 26억원 규모의 현장 계약과 35건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됐고, 혁신상 절반에 가까운 수상 실적을 올렸다. 숫자만 보면 성공이다. 그러나 이 한 문장은 그 화려한 성적표가 가리고 있는 본질을 정확히 찌른다. 한국은 CES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는 나라 중 하나지만, 동시에 CES 이후 가장 조용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트로피가 목적이 되는 순간

문제는 상이 아니다. 문제는 상이 목적이 되는 순간 혁신이 멈춘다는 데 있다. 코리아타임스는 최근 "한국의 장기 성장은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피상적 과대포장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문장은 점잖지만, 현실은 더 노골적이다. 우리는 기술을 증명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고, 중국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전시장을 이용한다.

코리아테크데스크의 분석은 더 직설적이다. "계약과 MOU는 수개월간의 기술 검증, 규제 적응, 고객 내부 승인 과정을 거쳐야만 매출이 된다. 한국 스타트업은 반복적으로 국제적 관심을 장기 파트너십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해왔다."

전시장의 함성은 크지만, 결산 보고서는 언제나 조용하다. 트로피는 쌓이지만 고객은 늘지 않는 역설이다.

화려한 부스 뒤의 냉정한 계산

불편한 진실이 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CES에서 가장 큰 부스를 운영한다. 삼성은 매년 최대 규모로 참가하고, 현대차와 LG는 화려한 쇼케이스를 펼친다. 그러나 정작 그 무대 위에서 총수들의 모습은 보기 어렵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3년 이후 13년간 CES 현장을 찾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CES는 점점 '내용은 없고 상징만 남은 행사'로 인식된다"고 말한다. 부스는 거대하지만, 정작 총수들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무대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전시장에서 증명되지 않으며, 가치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고객의 예산과 행동 변화가 결정한다는 것을.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의 조명보다 월스트리트의 실적 발표가 더 냉정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센터 스테이지를 점령한 중국

한국이 트로피를 수집하는 동안, 중국은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고 있다. CES 2026 현장에서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10년 전만 해도 중국 기업들은 한국 제품을 노골적으로 복제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기술이 궁금해서 부스를 찾는다. 예전엔 소니, 그다음엔 삼성과 LG가 장악했던 센트럴 홀이 이제 중국 기업들로 채워졌다. 오싹하다"고 말했다.

TCL과 하이센스는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다. 그들은 가장 비싼 공간에서 가장 큰 메시지로 새 기준을 제시한다. 중국은 상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 시장을 정의하러 온다.

테슬라는 CES에 참가하지 않지만 전기차 시장을 창조했다. 애플은 2023년 비전 프로 발표로 '공간 컴퓨팅'이라는 새 카테고리를 정의했다. 엔비디아는 AI 컴퓨팅 플랫폼으로 자율주행의 표준을 만들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인정을 받으러 가지 않고, 세상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선언한다는 것이다.

지원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CES를 비롯한 해외 전시회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 구조가 '전시회 참가'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스 참가비와 항공료 지원은 받기 쉽지만, 정작 시장 진출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이나 장기 고객 개발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어떤가.

스타트업은 보육 대상의 어린이가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도약할 준비가 됐을 때 발판을 놓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원 체계가 '가시적 성과'?전시회 참가 횟수, 수상 실적, 기업설명회(IR) 피칭 횟수?를 우선시한다면, 창업가들은 자연스럽게 고객보다 지원금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있다.

현재의 지원 체계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부가 미리 정해놓고, 그 틀에 맞춰야만 예산을 배정한다. CES 부스 지원은 받을 수 있지만,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현지 법인 설립이나 영업팀 구축 비용은 지원 항목에 없다. 결과적으로 창업가들은 고객을 찾아가는 대신, 지원금을 따라 전시장으로 향한다.

이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같은 패턴을 영원히 반복할 것이다. 정부는 '무엇을 지원할지'가 아니라 '언제 지원할지'에 집중해야 한다. 도약 준비가 된 기업에게 자본과 네트워크를 집중 투입하고, 그들이 스스로 시장을 선택하고 고객을 정의하도록 해야 한다. 스타트업을 어린이 취급하는 보육 정책에서, 성장 기업을 가속하는 도약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혁신의 가치는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만 증명된다. '가치 = 고객 증가 × 시장 영향력(Value = Customer Growth × Market Impact)'. 이 방정식 어디에도 '혁신상'은 들어가지 않는다. 코리아타임스는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지만, 중국을 앞서려면 더 명확한 AI·소프트웨어 비전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시장을 들어 올릴 용기

CES는 끝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받은 상은 명함이지 졸업장이 아니다.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수동적으로 인정받는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장을 정의하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리더가 될 것인가. 윤지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은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은 더 이상 한국의 기술력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세상은 한국이 무엇을 바꿀 것인지를 기다리고 있다. 전시 부스가 아니라 고객의 일상으로, 피치덱(Pitch deck)이 아니라 손익계산서로, 혁신상 개수가 아니라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것은 정부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스타트업을 키우고 보육원이 아니다. 전시회 참가가 과연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기여의 ROI가 나오는 우선순위 사업인지를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 정부는 스타트업에게 '어디로 가라'가 아니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원금이 트로피 컬렉션이 아니라 해외 시장 점유로 이어지는 구조와 OS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선택은 명확하다. 우리는 CES에 참가해서 상을 받는 나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CES가 주목하는 시장을 만드는 나라가 될 것인지.

트로피를 내려놓고, 시장을 들어 올릴 때다. 이제는 라스베이거스가 우리를 부르게 만들어야 한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데이비드 김 테크 저널리스트·Asia Value Creation Awards 회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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