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를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은 국가 경제 발전의 가장 중요한 전제다. 이 명제를 배격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지구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간주하는 우리 시대에는 에너지가 저렴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친환경적이어야 한다는 단서도 달린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다소 역행하는 역사의 한 장면을 살펴본다. 남의 나라 옛이야기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때는 17세기 후반, 장소는 네덜란드. 국명 자체가 ‘저지대’를 뜻하는 이 나라는 상습적 침수에 시달렸다. 그랬던 네덜란드는 어느덧 조선, 운송, 제조, 무역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게 되었다. 스페인 왕실로부터의 독립 과정인 80년 전쟁(1568~1648년) 끝에 탄생한 네덜란드 공화국은 칼뱅주의 종교개혁에 기반해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정착시켰다. 우수한 선박 제조와 정확한 지도를 통해 동남아까지 무역망을 연결했고, 증권시장에서 민간 자금을 원활히 조달했다. 바다 건너 이웃 나라 영국은 이러한 네덜란드를 시샘하고 경계했다. 영국은 17세기에 무려 세 차례나 네덜란드와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말끔하게 승리하지 못했다. 두 번째 전쟁 중이던 1667년에는 네덜란드 해군이 영국 템스강 하구까지 침공해 군함들을 파괴하고 돌아갈 정도로, 적은 막강했다.
그랬던 영국이 마침내 제조업 및 무역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안정된 에너지 공급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채취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토탄이었다. 토탄은 매장량도 많지 않고 수분이 섞여 있어 국내 산업의 양적 발전을 지원하기 어려웠다. 반면 영국에는 석탄이 풍족하게 매장되어 있었다. 석탄은 런던 등 도시 인구 증가를 가능케 했다. 또한 각종 제조업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영국의 석탄 생산량은 1700년에는 250만t에서 300만t 수준이었다. 18세기 들어 석탄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었고 공급도 거기에 발맞춰 증가했다. 18세기 말에 생산되는 석탄의 양은 연간 1500만t에 육박했다. 석탄의 생산량과 수요, 석탄 산업의 고용 인구는 19세기에 더 극적으로 증가했다. 석탄으로 물을 끓이며 달리는 증기 기관차를 비롯해 석탄이 하는 일의 목록도 길어졌다. 영국의 석탄 생산은 대영제국의 위세가 아직 당당하던 1913년에 2억8700만t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영국의 쇠퇴와 석탄 생산 감소는 같이 진행됐다. 환경파괴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기 전 석탄 생산 감소의 주요 원인은 사회경제적 압력, 특히 전국 탄광 노동자 조합의 파업과 쟁의였다. 노동쟁의는 임금 상승과 채산성 악화라는 양면의 결과로 이어졌다. 보수당이 정권을 잡은 1984년, 마거릿 대처 수상은 1년째 지속되는 광부들의 파업에 맞서 탄광을 아예 폐쇄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탄광 폐쇄는 그 후 시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2024년 9월, 영국의 마지막 석탄 화력 발전소가 폐쇄되면서 석탄의 나라 영국에서 석탄은 사라졌다. 석탄을 말끔히 추방한 21세기 영국에서는 그 나라가 한때 세계 최대의 제조업 강국이었다는 사실은 전설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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