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20일 취임할 당시 세계 경제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취임 전부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단어로 “관세”를 꼽았던 그는 취임 당일 즉각 26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보호무역주의적 경제정책을 쏟아냈다. 지난 15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행정명령은 총 229개, 각서는 57개에 달한다. 상반기 내내 숨가쁜 관세전쟁이 이어졌다.
1년이 지난 지금, 세계 경제의 성적표는 어떨까.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적응한 듯이 보인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보고서는 공통적으로 지난해 하반기 세계 경제가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미국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도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인공지능(AI) 붐이 지속되면서 증시는 아슬아슬하되 지속적인 랠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세계 경제가 편안한 안정기를 구가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시차를 두고 ‘트럼피즘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수다.

세계은행(WB)은 지난 13일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2.6% 수준일 것이라는 전망치를 발표했다. 작년 6월에 전망했던 것(2.4%)보다 0.2%포인트 높였다. 작년 6월 종전 전망치를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던 인더밋 길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는 올해 이를 다시 상향하면서 “세계 경제가 무역 긴장과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도 ‘예상보다 강한 회복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OECD는 작년 6월 세계 실질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1~0.2%포인트 낮춰잡았으나 12월에는 “세계 경제 성장률이 깜짝 놀랄 정도로 견조했다”면서 전망치를 상향(2025년 2.9%→3.2%)했다. 이번 주 발표될 예정인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도 비슷한 조정을 거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경제가 금세 무너지지도 않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예상하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작년 9월에 예상할 때는 1.8%였으나 석달 후엔 2.3%로 훨씬 낙관적으로 바뀌었다.
미국 세금정책센터(TPC)가 추정하는 현재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17%다. 모든 나라를 상대로 10% 상호관세를 부과한 것에다 중국(20%, 기존관세 제외시), 한국·유럽·일본(각 15%), 베트남(20%) 개별관세율을 가중평균한 결과다. 트럼프 정부 출범 전 평균 관세율이 2~3%였던 것에 비하면 높아졌지만, 한때 대중관세율 145% 등을 거론하던 것에 비하면 약해졌다. 반도체 등 분야에 대한 품목관세가 아직 본격적으로 부과되지 않은 영향도 컸다.
기타 고피나스 전 IMF 수석 경제학자와 브렌트 네이먼 시카고대 교수가 지난해 트럼프 관세를 분석한 워킹페이퍼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실제 징수 관세율은 14.1%에 그쳤다. 미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이 대응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각개격파 전략에 실제 대응관세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회성이긴 하지만 관세 부과를 앞두고 미리 물건을 받아두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교역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현상도 발생했다.
경제학자들은 ‘최적 관세율’을 따지기 시작했다. 무관세가 항상 옳다고 여기던 기존의 통념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양상이다. 올레그 잇쇼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부채 규모를 고려할 때 최적 관세율은 9% 수준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러 경제학자들이 10% 안팎의 저율 관세는 큰 무리 없이 받아질 수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미국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말 22%에서 2024년 말 12%, 지난해 중순에는 8%까지 낮아졌다. 미국이 공급망 분리를 의도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저가 상품이 매대에서 사라지면서 저소득층은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타격을 입고 있다.
생산자 물가도 상당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고피나스 등은 미국의 수입관세가 미국 내 생산자 및 소비자에게 전가된 비율이 94%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2018년 트럼프 1기 정부에서는 이 비중이 80%였던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미국은 관세전쟁을 통해서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대만 등 주요 동맹국에게서 대규모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미국이 치르는 대가도 있다. 동맹들은 미국으로부터 다각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형제국으로 여겨졌던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는 지난 16일 다섯 명의 각료단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경제 협력을 약속해 충격을 안겼다. 카니 총리는 무거운 얼굴로 이 파트너십이 “새로운 세계 질서에 잘 대비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압도적이던 대미 수출 비중(70%)을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럽은 중남미 국가들의 연합 메르코수르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점진적·포괄적 환태평양경제공동체(CPTPP)에도 가입을 타진하고 있다. 한국도 일본에 CPTPP 가입을 신청했다. 미국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제적 유대가 한층 강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의 ‘거래적 태도’는 달러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브넴 칼렘리-외즈칸 브라운대 교수는 미국 경제학회(AEA)에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은 통상 달러 강세로 이어지지만, 지난해 달러가 약세를 띤 것은 ‘불확실성 충격’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상실될 경우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린다 테사 미시건대 교수는 “시장은 단순한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을 넘어 미국 제도의 근본적인 실존적인 위기를 달러 가치에 반영하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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