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주요 반도체 생산국을 상대로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반도체에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은 한국 기업들이 주력으로 수출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대상에서 제외돼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이 투자 압박을 노골화하면서 향후 적용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뉴욕주 시러큐스 인근에서 열린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8월 수입 반도체에 100% 관세 부과 방침을 내놓은 뒤 전면 도입은 유예한 채 각국과 협상을 진행해온 가운데, 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고율 관세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최근 대만과의 협상에서 미국 내 투자와 생산능력 확대를 전제로 한 관세 면제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무역 협상에서 ‘한국의 반도체 교역 규모 이상의 반도체 교역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 합의에서 제공될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최혜국 대우 장치를 확보했지만, 미 상무부는 이날 ‘대만과 같은 면제 기준이 한국에도 적용되느냐’는 질의에 대해 “국가별로 별도 합의를 할 것”이라고 밝혀 동일 조건이 자동 적용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지난 14일 발표한 반도체 관세 포고령에서 엔비디아와 AMD의 고성능 AI 시스템 반도체가 관세(25%) 조치의 주요 대상으로 꼽힌 가운데 그간 한국 기업들이 주로 수출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반도체와 파생상품 수입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며 대상 확대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H200에 그치지 않고 다른 제품으로도 조치가 확산될 경우, 한국 기업들도 다시 최대 100% 고율 관세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2단계 조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공동설명자료에 명시된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조건’ 원칙에 기반해 합의 사항을 면밀히 분석하고 업계와 소통하면서 미국 측과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산업통상부 등의 반도체 관세 관련 조치를 보고받고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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