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조부모님이 제주 출신입니다. 항상 제주에서 전시하고 싶었는데, 포도뮤지엄 전시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에 참여하게 되어 기뻐요. 먼저 내 소개를 할게요. 나는 패밀리 네임이 세 개 있어요. 우선 한국 성 姓은 ‘김’입니다. 국적과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지요. 또 하나는 일본 성인데, 지금은 결혼해서 남편 성을 씁니다. 일본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일본 사회의 가부장적 분위기를 알 수 있지요. ‘카나자와’는 지금은 잃어버린 결혼 전에 쓰던 성으로, 이제 아티스트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수미’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통용되는 이름입니다. 나 한 사람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지요.”</i>
재일교포 3세 미술가의 이름
그녀의 이름 하나에 국가와 민족, 여성과 마이너리티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이처럼 재일교포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일상 사물을 수작업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첫 작품은 일본 거주 외국인이 부여받았던 외국인 등록번호를 등에 그렸던 사진 시리즈였다. 그녀가 미술가가 된 이유도 재일교포로서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에 미술학원에서 마음이 안정을 찾았던 추억에서 비롯됐다. 어린 시절부터 고뇌에 빠졌던 그녀의 진중한 작품은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이번 그룹 전시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에서도 수미 카나자와의 작품이 유독 시선을 끈다. 전시장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별들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서 보면 빛나는 은하수인데, 가까이 가보면 신문 위에 10B 연필로 차곡차곡 그림을 그린 작품이라 놀랍다. 연필의 촉감으로 인해 별들은 반짝이며, 신문 위의 기사는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기록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한다. 서로 다른 날짜의 신문들이 연결되면서 미술관에 우주와 같은 장막이 드리워지고 작가만의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 이번 전시 작품은 200장의 신문 작품으로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550장 정도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의 의미
그녀는 왜 신문에 그림을 그릴까? '드로잉 온 뉴스페이퍼 (Drawing On Newspaper)' 연작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비디오 저널리스트 어시스턴트를 하던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그때 일이 많아서 너무 피곤했고, 취재 대상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당시 정권 교체 시기라서 집 안에 신문지가 굴러다녔는데, 아무 생각 없이 정권을 잡은 정치가 얼굴을 연필로 칠했더니 아름다운 밤하늘이 되더라고요. 연필로 신문을 칠해버림으로써 현실과는 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관점을 바꾸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거죠. 앞으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신문지 한 장을 칠하면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리라는 것도요.”</i>

그녀는 신문 작업을 마음속에 품었고, 2017년 아이가 태어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자 이를 떠올리게 됐다. 아이가 잠든 밤 9시부터 새벽까지 식탁에서 신문 위의 사진을 연필로 지우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소중했다. 한밤중의 작업은 작가에게 해방과 자유이자, 일종의 치유이기도 했다. 머릿속이 비워지는 것 같고, 마치 불경을 필사하는 듯했다고. 그러다 우연히 작품을 본 큐레이터의 추천으로 도쿄 모리미술관 전시가 이어졌다. 그 연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초기 작품은 교포 3세로서의 정체성에서 출발했지만, 이 연작은 결혼한 여성의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되었다니 흥미롭다. 그녀의 첫 작품은 일본 거주 외국인이 부여받았던 외국인 등록번호를 등에 그렸던 사진 시리즈였다.
<i>“포도뮤지엄 전시 제안을 받고 일본의 과학자가 지구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지구가 사과라면 우리가 사는 장소는 겨우 얇은 사과 껍질이라는 것이죠. 성층권까지 포함해도 인간이 사용하는 부분은 아주 적고, 그 안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언젠가는 죽지요. 이 생각을 하며 전시에 선보일 신문을 계속 칠했어요. 우주에서 보면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 작은 점에서 우리가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이 신비합니다.”</i>
작지만 거대한 신문, 그 위에 그린 은하수
신문을 지우는 작업은 SNS에서 정보로 정보를 지우는 현상도 연상시킨다. 요즘 세상은 너무 많은 정보가 있기에 내 시간을 느끼기 어려운데, 신문을 지우면서 필요한 것만 끄집어내어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작업을 할 때는 한 장의 신문마다 완결된 느낌으로 진행한다. 한 장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약 5일의 시간이 걸린다.
<i>“2017년에 이 연작을 처음 선보인 전시에서 80대 남성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내 작품에서 일본이 전쟁에 패하고 군국주의적 색채를 검은색으로 지웠던 초등학교 교과서를 떠올렸다고 해요.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내 작품이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공문서를 칠해 버렸던 위조 사건도 많았어요. 관람객마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겹치면서 인간의 추억과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죠.”</i>

신문은 작지만 작지 않다. 작은 요소가 모여 큰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 의미 있다. 그녀는 덧칠한 신문들을 이어서 공간을 확장하는데, 이는 기록의 확장과 반복이다. 하나의 시간 축을 난도질해서 나누었다가 전시마다 주제에 따라 재구성한다. 혼재 속에 확산한 우주가 작품의 컨셉이다. 어떤 시대의 어떤 작품인지 파악이 잘 안되도록 작품을 만들며, 인류의 문제는 우주 안의 문제라고 본다. 유일무이한 개인의 시간 감각은 자유로워야 하는데, 사회의 시간 속도는 빠르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녀의 설치 작품은 전시실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하지만, 접으면 한 장의 종이로 돌아간다. 한 장 한 장마다 그때의 주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서 난민 여성이 나온 뉴스를 보았다면 이에 관련한 드로잉을 그려 전시 주제와 연결하는 것.

<i>“신문을 까맣게 지우다 보면 반대로 더 잘 보이는 것이 있어요. 어떤 별은 육안으로 보이지만 안 보이는 별들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도시에서는 인공조명이 많아서 별이 안보이지만, 그렇다고 별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보이지 않는 별을 열심히 찾아가면서 신문 위에 그리고 있어요.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신문에는 다양한 기사가 나오고 다양한 표현이 그려집니다. 팬데믹 시기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남자아이가 중학생이 된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코로나19 시대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지요.”</i>
그녀는 남학생의 한마디에 꽂혀서 그 부분만 남겨두고 다 까맣게 칠해서 하나의 빛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문 작품마다 가장자리에 2㎝의 여백을 남기는데, 설치하면서 가려져 최종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별을 상징한다.
파란 하늘을 그리는 날, 왜?
그는 '드로잉 온 뉴스페이퍼' 연작을 평생에 바칠 라이프워크 작업으로 여긴다. 전시마다 하나의 은하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i>“조각조각 산재해 있는 사회의 시간 축을 하나의 떠다니는 세계인 은하수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여기저기 발생하는 사회 현상은 각각의 별이기에, 굳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지요. 히로시마 원폭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를 연결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만의 시간 감각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미래와 과거가 혼재하는 상황 속에서 개인이 더 풍요롭게 시간을 조율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은하수를 그리는 것으로 내 안의 이야기를 연결합니다.”</i>
신문 연작의 또 다른 버전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신문에 파란 하늘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업을 매일 하다 보면 어떤 날은 그날의 신문에 어떤 기사가 실릴지 미리 알 수 있는 때가 있다고.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8월 6일과 8월 9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년 그날에는 원폭과 관련한 기사 위에 파란 하늘을 그린다. 앞으로 인류가 또다시 이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앞으로도 하늘이 이렇게 아름답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이 연작도 계속 모아서 수십 년 뒤 하늘로 뒤덮인 설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란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은 수미 카나자와 이외에 모나 하툼, 제니 홀저, 라이자 루, 사라 제, 마르텐 바스, 이완 등 13명의 미술가가 참여한 기획 전시다. 광활한 우주 속의 미약한 존재인 우리의 현실을 인식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다. 8월 8일까지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다.
이소영 프리랜서 미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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