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일 찾은 미국 방위산업 기업 헌팅턴잉걸스인더스트리의 미시시피 조선소는 거대한 군사 요새와 다름없었다. 여의도(290만㎡)보다 큰 부지(324만㎡) 전체가 높은 철조망으로 빙 둘러싸였고, 곳곳엔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이런 미국 해군의 핵심 보안시설에 가장 많이 드나드는 ‘이방인’은 다름 아닌 한국인이다. HD현대중공업의 선박 설계 및 생산 능력을 높이 산 헌팅턴잉걸스가 함정 공동 건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에릭 추잉 헌팅턴잉걸스 전략개발 총괄부사장은 “차세대 군수지원함 설계·건조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HD현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미 조선업 협력의 상징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가 트럼프 정부 2년 차를 맞아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이 군수지원함 등의 설계·건조 기술을 미국에 전수하면서 기자재 납품 등 일감을 따내는 방식이다. 사실상 ‘한 몸’이 된 미 해군으로부터 전투함 건조 노하우를 배울 길도 열렸다.한·미 군함 공동 건조 프로젝트의 맨 앞에 선 회사는 HD현대와 헌팅턴잉걸스다. 두 회사는 미 해군이 발주하는 차세대 군수지원함 개념 설계 입찰에 공동 참여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등 전투함 기술 관련 세계 최고 기업(헌팅턴잉걸스)과 선박 건조 분야 세계 최강 기업(HD현대중공업) 간 결합이라는 점에서 수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HD현대중공업은 상선뿐 아니라 1987년 뉴질랜드에 ‘엔데버함’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군수지원함을 여러 차례 건조했다. 반면 미국은 조선 인프라가 붕괴하면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구축함 2척과 호위함 1.2척을 건조하는 데 그쳤다. 추잉 부사장은 “서로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줄 최적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두 회사의 협력은 HD현대의 설계 도면과 미국에 수출한 핵심 기자재, 건조 노하우를 기반으로 헌팅턴잉걸스 조선소에서 군함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번스-톨리프슨 수정법에 따라 해외 건조를 금지한 해경 쇄빙선 건조를 핀란드에 맡긴 것처럼 언젠가 군수지원함도 한국에서 짓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팅턴잉걸스 관계자는 “번스-톨리프슨 수정법은 안보 관련 긴급 상황에 한해 예외를 명시하고 있다”며 “이 조항을 활용하면 한국에서 건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는 헌팅턴잉걸스와 미국 조선소 인수나 인프라 공동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정부 물량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기반을 만든다는 얘기다. 추잉 부사장은 “HD현대와의 협업을 통해 헌팅턴잉걸스가 상선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는 수주를 염두에 두고 현재 1개뿐인 ‘드라이 독’(바닷물을 뺀 상태에서 건조하는 방식의 독)을 4개로 늘리기로 했다. 조선소 부지도 확장한다. 이종무 한화필리조선소 사업기획총괄은 “하나의 독에서 연 8척 이상 생산하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처럼 탈바꿈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한화필리조선소의 연 건조량은 1.5척에서 20척으로 늘어난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의 자회사 나스코와 함께 최대 50억달러(약 7조5000억원)에 이르는 미국 차세대 군수지원함 사업에 뛰어든다. 정부 발주 선박과 상선 분야 협력도 넓힐 예정이다. 브렛 허시먼 나스코 사업개발 담당 이사는 “삼성의 최신 설계와 건조 기술, 공법 등을 도입할 것”이라며 “한국 숙련공들이 미국에서 일하거나 교육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스카굴라/필라델피아=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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