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손 두 번째 손가락에 깁스를 한 모습이었다. 연습 때만 손가락을 쓰기 위해, 평소엔 사용하지 않기 위해 한 것이라고.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하며 연주회를 준비 중이라는 그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서 너무 불안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면서 웃었다.
미소의 주인공인 그룹 소녀시대 출신으로 연기자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서현(본명 서주현)이다. 서현은 오는 3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되는 '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8회 정기연주회'에 특별 협연자로 나선다. 서현은 이번 공연에서 강렬한 리듬과 애절한 선율이 교차하는 비토리오 몬티의 명곡 '차르다시'를 연주할 예정이다. 연주회를 위해 배우와 가수로서 모든 일정은 멈추고 몇달째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그였다.
서현이 클래식 애호가인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자연스럽게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 제안을 받아 SM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봤지만, 아는 가요가 없어서 동요를 불러 합격한 서현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설로 이어지는 일화다. 연예계에 빼앗긴 클래식 인재였던 셈이다.
소녀시대 데뷔 후에도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음대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한 '노다메 칸다빌레'라 말하고, 피아노 건반 무늬 에코백을 즐겨 들고 다닐 만큼 "클래식이 좋다"던 서현이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피아노를 모티브로 한 열쇠고리를 흔들며 보였다.
서현에게 "피아노를 버리고 바이올린을 시작한 거냐"며, "5개월을 배워 '차르다시'를 완곡하는 거면, 바이올린 천재였던 거 아니냐"고 농담을 담아 물었다. 그러자 "절대 천재가 아니다"고 손을 흔들며 "사실 어릴 때 4년에서 5년 정도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20년 동안 안 하다 성인이 돼 다시 배웠다. 그래서 5개월이라고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올린이 너무 재밌다"며 "피아노가 첫사랑이라면, 바이올린은 끝사랑이다. 둘다 '찐' 사랑이다"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대중예술을 하고, 바쁘게 살아왔지만 여유가 생길 땐 늘 클래식을 찾았던 거 같아요. 제 인생 목표가 '건강하게 살자'인데, 거기에 정신적인 건강도 포함돼요. 제가 찾은 건강하게 사는 법은 독서와 음악이에요. 드라이브도 하고, 운동도 배워보고 많은 걸 도전해봤는데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칠 때 가장 행복하더라고요. 그러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님을 알게 됐고, 제가 하나에 빠지면 덕질을 열심히 하거든요. 그래서 혼자 따라서 10시간씩 피아노를 치다가 10개 손가락 모두에 관절염이 왔어요.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교수님을 찾아 제대로 배워보게 됐고요."
서현은 "이루지 못한 꿈이었고, 취미생이라 마냥 재밌어서 무식하게 쳤다"면서 "제대로 배워보니, 제가 지금까지 한 건 그냥 두드린 거였다. 신세계를 맛보게 됐다"면서 전문 연주자들에게 존경심을 드러내며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피아노를 제대로 치기 시작하면서 클래식에 떠 빠져들게 됐고, 그러다 어릴 적 배운 바이올린을 다시 배우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집 방 한 칸에 방음 장치를 설치해 그랜드 피아노에 내주고, 밥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하루에 10시간 넘게 연습하는 모습은 전문 연주자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아 보였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우리 아가"라고 칭할 정도지만, 서현은 "취미생이라 그렇다"며 "누가 시키면 그렇게 못 한다"면서 또다시 겸손하게 답했다.

어릴 적 배운 바이올린은 서현에겐 고통의 기억도 있었다. 고개를 어깨에 댄 바이올린에 밀착시키는 연주 자세 특성상 몸의 중심축이 비틀어지기 쉽다. "목이 아파서 다시는 바이올린을 못 하겠구나 싶었다"는 서현은 "필라테스를 오래 하면서 몸이 좋아졌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니 도전 의식이 생겼다. '피아노에서 이해하지 못한 걸 이해할 수 있다'고 피아노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진짜 그런 게 느껴지더라"라면서 바이올린에 빠져든 과정을 전했다.
이어 "3개월쯤 배웠을 때 선생님에게 저와 같이, 프로가 아닌 클래식을 좋아하는 분들이 모인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들었다"면서 협연 제안을 받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처음엔 겁도 났지만, 반가웠어요. 제 주변에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같이 얘기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분들과 함께 좋아하는 클래식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감사하게도 타이밍도 딱 맞았고요.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됐습니다. 그분들의 파티에 참여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좋은데, 결정하고 나니 파티 장소가 너무 좋은 곳인 거예요.(웃음) 제가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최종 목표가 '차르다시'였는데, 지금 너무 어려워서 고생 중입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비토리오 몬티의 명곡으로 꼽히는 '차르다시'는 헝가리 민속무곡을 바탕으로 1904년 작곡됐다. 원래 만돌린을 위한 곡으로 쓰였지만,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됐다. 짧지만 다채로운 감정과 빠른 멜로디 전환, 극적인 전개가 특징이다. 서현은 "'차르다시'는 짧지만 임팩트 있고, 다이내믹하다"며 "초반엔 애수 어린 마음이었다가 행복해지고, 정열적이다가 기쁨과 환희가 다 있다"고 소개했다.
서현은 연주회를 위해 한 곡만 곱씹으며 연습하는 게 지루할 법하지만 그 과정까지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습하지 않을 땐 양인모, 고소현 님의 '차르다시' 연주를 듣는다"며 "귀는 더 고급이 돼 연습할 때 괴롭지만, '음 틀렸네', '소리가 나갔네' 하면서 감점하는 그런 연주회는 아니니까, 그저 '사랑하고 좋아하면 도전할 수 있는 거다'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연주회 소식이 알려진 후 공개돼 화제가 된 사진에 대해 "전문 연주자 같았다"는 반응을 보이자, "그건 배우 모드로 찍은 것"이라며 "선생님이 안내문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하다고 찍어 오라고 하셔서 '난 최고의 연주자다', '바이올린 천재다' 자기최면을 하며 찍은 사진"이라면서 웃었다.

촬영장에도 휴대용 피아노 건반을 갖고 다니며 연습을 하고, 2024년 촬영장에서 사고로 다리가 골절됐을 때에도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빨리 일어나야지' 마음먹게 됐다. 피아노가 절 살렸다"면서 눈을 반짝일 정도였다. 연주회 후에도 "평생 취미니까, 바이올린을 갖고 다니면서 연습을 할 것"이라면서 음악과 함께 평생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클래식 전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악기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책임감인지, 하면 할수록 느끼게 돼요. '이런 음악을 하려면 어떤 세월을 보낸 걸까' 싶기도 하고요. 제가 안 해본 영역이라 더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더 꿈을 꾸게 되는 거 같아요. 전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게 아니니, 그저 이렇게 즐기고 싶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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