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한국의 반도체 분야 '최혜국 대우'와 관련해 국가별로 별도의 합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이후 작성된 팩트시트의 효력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문구상으로는 한국이 경쟁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적용받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미국 측에 상당한 재량을 남긴 합의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간) ‘한국도 대만과 동일한 (반도체) 관세 면제 기준을 적용받느냐’는 질의에 대해 “국가별로 별도의 합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대만이 체결한 생산량 연동 관세 면제 기준을 한국에도 일괄 적용하지 않고, 한국과는 별도의 협상을 통해 조건을 조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산업통상부 등 우리 정부는 당시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개한 팩트시트를 통해 한국이 미국의 반도체 정책에서 경쟁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당시 브리핑에서 “대만 등 주요 반도체 경쟁국과 비교해 한국이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적용받도록 협의가 이뤄졌다”며 “최혜국 대우에 준하는 원칙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교역 규모를 둘러싼 문구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반도체 교역 규모 이상의 반도체 교역을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교역 규모를 어떤 방식으로 산정하는지, 비교 대상 국가는 어디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빠져 있다. 여기에 ‘미국이 판단한다(as determined by the United States)’는 표현까지 포함되면서 적용 기준과 해석 권한이 미국 정부에 집중되는 구조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비교 대상 역시 ‘향후 체결될 합의에서 제시될 수도 있는 조건(may be offered in a future agreement)’으로 설정돼 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조건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여지를 둔 만큼, 국가별 상황에 따라 조건을 달리 적용할 수 있는 구조를 열어둔 셈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팩트시트에 구체적인 조건이 적혀 있지 않다 보니 미국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도 이를 문제 삼기 어렵다”며 “이런 상태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이 어떤 기준으로 대응해야 할지 알기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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