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현재 세계 패권 경쟁의 전장은 더 이상 국경선 위가 아니다. 전력망, 해저 케이블,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국경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꺼내든 ‘그린란드 카드’는 표면적으로 미국의 일방주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교하게 설계한 인공지능(AI) 연산 주권 전쟁의 핵심 퍼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이후 다시 그린란드를 언급하기 시작했을 때 유럽 외교가에서는 이를 “또 하나의 정치적 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싱크탱크와 빅테크 업계에서 흘러나오는 분석은 전혀 다른 그림을 가리킨다. 그린란드는 더 이상 ‘구매 대상 영토’가 아니라, 미국 AI 제국의 에너지·냉각 병기창이라는 것이다.

현재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최대 비용 항목은 인력도, 반도체도 아니다. 전력과 냉각이다. 오픈AI, 구글, 메타, 아마존이 구축하는 차세대 AI 데이터센터는 하나당 수백 메가와트(MW)의 전력을 소모한다. 이는 중소도시 하나가 쓰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문제는 이 전력이 더 이상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본토에서는 전력망 포화, 환경 규제, 주민 반대가 겹치며 신규 발전소와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 틈에서 미국 전략가들이 다시 주목한 곳이 바로 그린란드다.
그린란드는 연중 영하권 기온을 유지하는 ‘천연 냉각기’다. 서버 냉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동시에 빙하 아래에는 막대한 수력·지열 자원이 매장돼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최근 CSIS와 아틀란틱 카운슬 보고서는 그린란드를 “미국 빅테크 전용 데이터센터 자치구(Potential AI Sovereign Zone)”로 규정했다. 군사 기지가 아니라, 연산 기지라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가 덴마크와 관세·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키우는 배경에도 이 전략이 깔려 있다. 표면적으로는 방위비 분담과 통상 마찰이지만, 실제 목표는 그린란드의 경제적 종속 구조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무력 충돌 대신 인프라 투자와 안보 보장을 앞세운 ‘연성 병합’을 택하고 있다. 빅테크 데이터센터, 군사 위성 기지, SMR(소형모듈원자로) 기반 발전소를 대규모로 유치해 그린란드의 재정과 일자리를 미국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시나리오다. 유럽 외교 소식통은 “그린란드가 공식적으로 미국령이 되지 않더라도, 실질적 통제권은 미국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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