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2023년 도입한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미국을 향해 처음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야욕에 맞선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8개국을 상대로 다음달 1일부터 10%, 오는 6월 1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 EU, 영국과 각각 무역협정을 맺고 EU산 수입품에 15%, 영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이번 갈등은 유럽 8개국이 참여한 군사 훈련 ‘아틱 인듀어런스’를 계기로 불거졌다. 이는 덴마크와 일부 유럽 국가가 북극 안보를 위해 마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상호운용성 훈련으로, 덴마크의 그린란드 주권을 지지하는 연대 취지로 계획됐다. 미국은 이를 직접적인 도발로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국가가 “알 수 없는 목적으로 병력을 배치했다”며 “지구 안전과 생존에 매우 위험한 게임”이라고 비난했다.

다른 하나는 ACI 발동이다.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 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다만 2023년 도입 이후 한 번도 사용된 적은 없다. 당초 ACI는 중국 횡포를 겨냥해 설계된 대응 전략이다. 2021년 리투아니아가 대만이라는 국명을 사용해 대표부를 개설하자 중국이 리투아니아산 수입품 통관을 막는 등 보복에 나섰다. EU는 이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 분쟁 해결에 시간이 걸리자 EU 내부에서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 수단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결과물로 ACI가 마련됐다.
다만 ACI 실행까지 EU 의회 논의 등 수개월이 걸리고, 한 번 쓰면 미국과 동맹 관계가 구조적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그동안 ACI는 일종의 억제 전략으로 활용됐다. 유럽의 실질적 대응 방향은 22일 열리는 정상급 회의에서 최종 조율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유럽의 선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유럽이 나토 체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미국의 안보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전날 NBC방송 인터뷰에서 “유럽 지도자들은 결국 미국의 안전 보장 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라며 “미국이 지원을 끊는다면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든 것이 붕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U가 대미 수출과 금융·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무역 전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의 반격이 유럽 경제와 안보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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