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공정하고 일방적인 파리기후변화협약 사기로부터 즉시 탈퇴하겠습니다.”
2025년 1월 20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파리협정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인 2026년 1월 21일,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가 공식 발효됐다. 미국의 두 번째 파리협정 탈퇴다.
미국과 파리협정의 악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16년 9월 파리협정을 비준했다. 그러나 이듬해 집권한 트럼프는 취임 6개월 만인 2017년 6월 전격적으로 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실제 탈퇴는 2020년 11월 4일에야 이뤄졌는데 파리협정 발효 이후 3년이 지나야 탈퇴를 통보할 수 있고, 통보 이후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가 완료된 날은 바이든이 트럼프를 꺾고 당선된 제46대 대통령 선거 바로 다음 날이었다. 두 달 후 취임한 바이든은 곧바로 파리협정 복귀를 선언했고, 결과적으로 당시 미국의 ‘기후 공백’은 두 달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바이든 행정부의 신속한 복귀로 인해 ‘3년간 탈퇴 통보 금지 기간’은 이미 경과했다. 그 덕분에 트럼프 2기 행정부는 4년을 기다렸던 지난 1기와 달리 불과 1년 만에 파리협정을 탈퇴할 수 있었다.
美, 파리협정에 이어 유엔기후변화협약도 탈퇴 선언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 탈퇴가 발효되기 2주 전인 2026년 1월 7일 또 한 번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포함한 66개 협약과 국제기구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국제 기후 체제는 흔히 ‘우산 구조’로 설명된다. 1992년 리우회의에서 채택된 UNFCCC가 헌법에 해당하는 상위 규범이라면 2015년의 파리협정은 그 아래에서 구체적 이행 규칙을 정한 하위 법률에 해당한다.
실제로 UNFCCC 제25조에는 “협약에서 탈퇴한 당사국은 모든 의정서에서도 탈퇴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상위법인 UNFCCC를 탈퇴하면 하위법인 파리협정에서도 자동 탈퇴되며, UNFCCC에 가입하지 않으면 파리협정에도 가입할 수 없다.
트럼프 1기 당시에도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UNFCCC 탈퇴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당시 행정부는 ‘협상 테이블에는 앉아야 미국의 이익을 방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잔류를 선택했다. 하지만 2기 행정부는 기후 대응 자체를 ‘미국 국익을 갉아먹는 사기’로 규정하며, 협상 테이블 자체를 박차고 나왔다. 이로써 2027년 1월부터 미국은 UNFCCC 당사국 지위를 상실하고, 국제 기후 무대에서의 모든 의결권과 발언권을 잃게 된다.
냉정하게 볼 때, 이번 공식 탈퇴 선언이 당장 국제 기후 협상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미 ‘사실상의 이탈’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25년 11월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정부 공식 협상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또 UNFCCC 사무국과 녹색기후기금(GCF)에 대한 분담금 납부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세계 2위 온실가스배출국이자 최대 공여국의 부재는 이미 현실화됐고, 이번 탈퇴 선언은 이를 법적으로 추인한 행정 절차에 가깝다.
미국법상 ‘행정협정’과 ‘조약’의 결정적 차이는
미국법상 국제 합의는 크게 ‘조약’과 ‘행정협정’으로 나뉜다. 조약은 미국 헌법 제2조에 따라 대통령이 체결하고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비준된다. 반면, 행정협정은 상원의 비준 없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체결할 수 있다. 국제법으로는 2가지 모두 국가 간 구속력을 갖지만, 미국 국내법적 절차와 정치적 위상은 다르다.
2015년 파리협정은 상원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협정’ 형태로 가입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 동의 없이 탈퇴하고, 바이든이 즉각 재가입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1992년에 가입한 UNFCCC는 상원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정식 ‘조약’이다. 당시 협약은 구체적 감축 의무 대신 ‘배출량 안정을 목표로 한다’는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기에 공화당 의원 모두 찬성한 것이다. 문제는 미국 헌법이 조약의 체결 절차는 명시했지만, 탈퇴 절차는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관행적으로 외교 문제를 대통령의 전속 권한으로 인정해왔는데, 트럼프는 상원 동의 없이도 독자적으로 조약 탈퇴를 선언할 수 있었다. 실제 탈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복귀 시나리오다. 파리협정과 달리 정식 조약인 UNFCCC에서 탈퇴한 경우, 재가입 절차는 법적으로 훨씬 까다롭다. 원칙적으로 조약에 다시 재가입하려면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현재 미국 정치 지형에서 상원의원 100명 중 67명의 찬성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공화당 의원 34명만 반대해도 재가입은 부결된다.
물론 차기 대통령이 UNFCCC를 상원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협정 방식으로 재가입시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때 정식 조약으로 비준된 협약을 대통령이 임의로 ‘격하’해 재가입한다면, 심각한 위헌 논란과 소송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설령 법적 장벽을 넘는다 해도 신뢰의 문제 소지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행정명령 한 장으로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는 나라를 국제사회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그것이 세계 최대 영향력을 지닌 미국이라면, 국제 기후 협상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UNFCCC 탈퇴는 파리협정 탈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후 정책 후퇴가 아니라 차기 행정부의 복귀 경로마저 법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번 UNFCCC 탈퇴 선언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이사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