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려는 입법 논의가 최근 자본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회사가 자기 자금으로 자기 주식을 사들인다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다소 모호해 보이고, 자칫하면 주가 조작에 악용될 수 있다.자사주 매입은 1980년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규제를 완화하며 본격 도입된 주주환원 방식이다. 배당과 달리 주주가 자신의 과세 구간이나 현금 선호도에 따라 참여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유연성 덕분에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도입해 주가 안정과 부양에 활용해왔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주식이 줄어 일차적인 주가 부양 효과가 나타난다. 소각되지 않은 자사주는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시장이 가장 실망하는 경우는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사용될 때다. 소액주주들은 이를 더 유능한 경영진이 기업가치를 제고할 기회가 차단된 것으로 해석한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국가에서 ‘더 나은 경영진’ 후보는 국경을 넘어 외국 자본과 외국 경영진까지 포함한다. 한국 대표 기업도 외국 경영진이 더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만약 이들 기업의 경영권을 외국 자본에까지 전면 개방한다면 단기적으로 한국 주가는 상당폭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경영권 경쟁의 확대와 단기적 주가 상승 가능성만으로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경영권 방어 수단이 법적으로 거의 허용되지 않는 국가 중 하나다. 이런 환경에서 자사주는 국내 기업이 보유한 사실상 마지막 방어 수단이다. 자사주 매입만으로도 이미 주가 부양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데 여기에 소각까지 강제하려는 의도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주가가 조금 더 오를 수 있다는 이유로 한국 기업을 외국 자본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기업의 경영권을 세계 시장에 내놓고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이에게 넘김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단기적인 효율성만 따진다면 모든 유능한 인재와 자본이 서울에 집중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제도를 통해 지방 분산을 유도하는 이유는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소각 의무화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짚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책 지향점이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넘어 기업 밸류업을 통한 경제 활성화에 있다면, 일률적인 강제 소각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자사주 소각 여부를 경영 판단에 맡기는 해외 기업과 비교할 때 국내 기업의 재무적 유연성과 경쟁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단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보호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한다. 자사주 강제 소각으로 우리 기업을 성급하게 흔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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