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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리스크' 공포에 떠는 유럽…'최악의 시나리오' 봤더니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6-01-23 07:00   수정 2026-01-23 08:10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유럽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공동 기금처럼 묶어 위기 시 활용하는 이른바 '달러 풀링(Dollar Pooling)'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공급망인 미국 중앙은행(Fed)가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유럽, 달러 자산 공동 운영하나
23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 금융안정 당국 실무진들은 지난해 11월 비미국(Non-US)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달러 유동성을 하나의 거대한 풀로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달러 풀링'이라 불리는 이 구상은 Fed의 통화 스와프 라인이 정치적 이유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 Fed가 제공한 통화 스와프 라인은 글로벌 달러 가뭄을 해소하는 공공재로 평가받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무제한으로 달러를 공급받을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과 같았다.

Fed는 위기 때마다 전 세계 중앙은행에 달러를 무제한 공급하며 시장을 진정시키는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수행했다. 2020년 위기 당시 Fed가 공급한 달러 스와프 자금은 최대 449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냈다.

최근 유럽의 움직임의 계기는 명확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파월 Fed 의장의 거취를 위협하자 '마이너스 통장'이 언제든 미국의 외교·안보적 이익에 따라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오히려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태는 새로운 식민주의와 다를 바 없다"며 "동맹국조차 경제적 강압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유럽은 독자적인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럽 은행의 '달러 중독'
유럽이 '달러 풀링' 시스템을 검토한 배경에는 유로존 은행 시스템의 '달러 중독'도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은행감독청(EBA)의 2025~2026년 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유로존 은행들의 전체 자금 조달 중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7%에 달한다.

자산과 부채의 불일치도 심각하다. EBA 분석 결과, 유럽 은행이 보유한 달러 표시 자산은 전체 자산의 약 23%다. 조달 비중(부채)보다 높다. 이는 위기 시 갚아야 할 돈보다 묶여 있는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달러 자금 시장이 경색될 경우 이른바 '유동성 갭'이 발생할 수 있다. 자산의 만기가 길고 부채의 만기가 짧은 '만기 불일치 때문에 단기 달러 자금 시장이 경색되면 은행은 보유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파산 위기에 몰릴 수 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애덤 포즌 소장은 "미국 밖에서 발행된 달러 표시 채권 및 대출 시장 규모는 약 25조 유로에 육박하지만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즉시 동원할 수 있는 달러 외화보유액 총합은 약 7조 유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유럽 은행들이 유사시 시장에서 달러를 구하지 못해 중앙은행으로 달려가도 중앙은행의 달러만으로는 해당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Fed라는 '무제한 달러 공급원'이 차단되면 유럽 금융 시스템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능가하는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

루이스 데 귄도스ECB 부총재는 "유럽 은행들의 달러 의존도는 단순한 리스크 관리를 넘어 생존의 문제"라며 "Fed와의 협력이 '평소와 다름없음'을 기대하지만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은행권 내부 시나리오에 따르면 유럽 은행들은 과거 0%로 가정했던 'Fed 스와프 라인 동결 확률'을 최근 5%로 상향 조정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이 '미국 리스크'를 더 이상 상상 속의 공포가 아닌, 실재하는 재무적 위험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의 '달러 풀링' 구상은 아시아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와 비슷하다. 각국이 가진 달러를 갹출해 급한 불을 끄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상도 태생적 한계는 '발권력의 부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Fed는 위기 시 달러를 무제한 생성해 공급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의 달러 풀링은 유한한 달러를 돌려막는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풀링 시스템 내부의 정치적 갈등 가능성도 있다. 위기 시 재정 건전성이 튼튼한 독일이 보유한 달러를 상대적으로 취약한 다른 국가의 은행을 구하는 데 선뜻 내놓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흔들리는 '달러 신뢰'
이런 지정학적·금융적 갈등은 거시경제 지표를 통해 나타났다. '달러 안전망'의 신뢰도가 흔들리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의 탈달러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신뢰의 자산'이었던 미 국채 대신 실물 자산인 금이 급부상하면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최근 18개월간 금 가격이 2배 상승하면서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 가치는 약 4조 달러에 달한다. 미 국채 보유액(3.9조 달러)을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추월했다.


오피셜 통화금융기구포럼(OMFIF)의 조사에 따르면, 중앙은행 준비자산 담당자의 70%가 "미국의 정치적 환경이 달러 투자의 걸림돌"이라고 응답했다.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COFER(공적 외화보유액 통화 구성)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전 세계 외화보유액 중 달러 비중은 56.92%를 기록했다. 여전히 과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70%대보다 크게 낮아졌다. 반면 유로화 비중은 20.33%로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부채 문제와 정책적 불확실성은 달러의 신뢰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잠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는 유럽보다 심각한 구조적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미국·유로존·일본·영국·스위스·캐나다 등 6개국이 맺고 있는 '상시 통화 스와프' 네트워크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위기가 닥치면 한국은 Fed의 선의에 기대어 한시적 스와프 라인을 요청하거나, 실효성이 떨어진 지역 안전망에 의존해야 한다.



한국이 참여한 아시아 역내 금융안전망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는 총 2400억 달러 규모의 자금 풀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IMF와 연계된 까다로운 조건(40%만 독자 인출 가능) 탓에 실제 위기 시 단 한 번도 가동된 적이 없어 '그림의 떡'이라는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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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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