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주요 주주인 미국 벤처캐피털(VC)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의향서를 제출하고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조사를 요청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과도한 표적 수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며, 이 때문에 수천억원대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 유력 인사들까지 지지 의사를 밝혀 이번 사태가 통상 마찰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한국과 중국의 대기업 경쟁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쿠팡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한국 정부가 노동, 금융, 세무 등 사안과 무관한 분야까지 전방위적 조사를 벌이며 공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 신천동 쿠팡 본사에서 진행 중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경찰청, 금융감독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서울본부세관 등 10여 개 정부 기관의 동시다발적 조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투자사들은 또 중재 의향서에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달 금융위·공정위 업무보고 당시 “마피아를 소탕할 때와 같은 각오로 시장 질서를 잡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적대적 규제의 근거로 제시했다.
투자사들이 ‘행동’에 나선 것은 쿠팡 주가 하락으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쿠팡 주가는 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11월 28일 28.16달러에서 이달 22일 19.95달러로 약 29% 급락했다. 그린옥스와 알티미터가 보유한 쿠팡 지분 가치 손실액은 7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련의 정부 조치로 수십억달러의 미국 투자금이 소멸했다”며 “추가 조치가 이어지면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실리콘밸리 유력 인사도 논란에 가세했다.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자 팰런티어 공동 창업자인 조 론스데일은 SNS에 “한국 정부가 중국의 전철을 밟아 미국 기업을 불법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며 “우리는 차별과 괴롭힘(bullying)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썼다. 개리 탄 와이콤비네이터 최고경영자(CEO)도 “한국 정부는 미국인이 협박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투자사들을 지지했다.
한국 정부는 “차별은 없다”며 즉각 진화에 나섰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영 킴 의원 등 미 하원의원 7명과의 오찬 자리에서 “쿠팡 차별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일부 의원이 ‘쿠팡 사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고 묻는 말에 “차별적인 대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미 관계는 신뢰 관계에 있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체포·구금한 사태를 빗대 이번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조지아 사건이 한국 노동자기 때문에 차별받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마찬가지로 쿠팡도 미국 기업이란 이유로 취한 조치가 아니다. 전혀 차별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총리실은 별도 설명자료를 내고 “김 총리의 마피아 소탕 발언은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강조한 원론적 취지였으며, 특정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 중인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를 만나 한·미 통상 현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로 협의했다.
안재광/배성수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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