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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100억 원의 선택

입력 2026-01-25 17:24   수정 2026-01-26 00:14

2020년 즈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온 한 엔지니어가 우리 회사에 합류했다. 이력서가 화려한 사람이었다. 연봉 협상 자리에서 그는 오히려 먼저 회사에 제안했다. 연봉 1억 원에 미래 100억 원의 가치가 될 수 있는 회사 주식, 혹은 연봉 20억 원만 받겠다고 했다. 과거 어떤 직원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미래 100억 원 가치의 주식과 연봉 1억 원을 골랐다.

돌아보면 그때 그는 우리 회사의 성장을 자신의 성장과 묶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는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했고, 미친 듯이 일을 해 우리 회사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놨다. 지금 그가 가진 우리 회사 주식 가치는 1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한국 기업의 수가 늘지 않을까? 한국은 분명히 잘한다. 삼성전자, SK 등은 반도체,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기업을 보면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미국 기업이다. 한국은 소수다.

왜일까.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미래 100억 원 가치의 주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나 글로벌 기업들은 “10년 안에 1조 달러 가치의 기업을 함께 만들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 돈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인재에게 주식으로 보상한다. 비전을 함께 실현하면 확실하게 보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몇 년 안에 수익이 나오겠는가?”를 먼저 묻는다. 수익성, 실현 가능성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글로벌 기업을 만들겠다는 야심은 납작해진다. 우리가 인도에 나간 이유도 결국 그것이다. 중국은 시장에 진출하기도, 경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특히 인도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14억 명의 시장에서, 금융 기술로 글로벌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

우리의 꿈을 실현하려면 그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처럼 생각하는 인재들을 끌어와야 한다. 당장의 연봉 20억 원 대신 미래의 주식 100억 원을 받겠다는 사람들, 단기 성공보다 장기 비전에 베팅하는 사람들.

한국에서 수백조 원 이상 가치의 기업들이 더 많이 나오려면, 결국 기업의 보상 시스템과 투자 시장이 바뀌어야 한다. 100억 원 가치의 주식을 택한 그 직원은 이제 우리를 떠났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래를 선택한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한국도 글로벌 기업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인재에게 우리는 같은 선택지를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투자 시장에서도 그런 선택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100조, 1000조 원 가치의 한국 기업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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