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4대 연구기관인 네덜란드국립응용과학연구기구(TNO)의 차크 친아소이 최고경영자(CEO)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진행되는 ‘탈산업화’와 혁신 저해의 원인으로 유럽연합(EU) 특유의 ‘컴플라이언스 문화’를 지목했다. 컴플라이언스는 법령·규정·윤리 기준을 준수하도록 EU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통제 시스템을 의미한다.
친아소이 CEO는 유럽의 각종 규제가 ‘병목 현상’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규제 때문에 도로도 막히고, 주택·학교 건설, 각종 인허가 등 모든 것이 막혔다”며 “가장 심각한 건 ‘에너지’”라고 꼽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전환 등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에너지 주권 문제가 불거졌지만 현 전력 수급 계획으론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 ‘에너지 플레이어’들은 자국의 더딘 인허가 절차와 과도한 규제를 피해 미국 시장으로 대거 이동 중이다.지난 11월 이탈리아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스타트업 뉴클레오가 영국에서 추진하던 160억 유로 규모 SMR 20기의 건설을 미국에서 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스테파노 부오노 뉴클레오 CEO는 11월 파리에서 열린 세계원자력전시회(WNE)에서 “미국에는 투자를 장려하는 많은 수단이 있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은 것이다. 네덜란드의 SMR 스타트업인 토리존의 산더 더그루트 최고기술책임자(CTO)도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빨리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원전 연료 업체인 오라노와 우렌코도 유럽 대신 미국에 새로운 농축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보리스 슈흐트 우렌코 CEO는 “미국이 우리의 생산능력 확대 프로그램에 장기 계약으로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우렌코는 미국 뉴멕시코에 연간 약 430만t의 우라늄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 중이며, 2027년까지 70만t의 생산능력을 단계적으로 추가할 예정이다.뒤늦게 에너지 자립 문제에 직면한 유럽에선 잇따른 원전 기업 이탈에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현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원전 규제 완화 행정명령이 유럽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들인 동력이 된 것으로 분석했다.
친아소이 CEO는 “유럽의 인허가는 보통 미국보다 2~3배 더 오래 걸린다”며 “미국의 규제 완화와 적극적인 투자 환경이 유럽 기업들을 미국으로 이전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델프트공대의 한 교수는 “초대형 해상 풍력 인근의 기류 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 문제, 바다에서 생산된 전기의 누전과 풍력 소음 문제가 발생중”이라고 전했다. 네덜란드는 2040년까지 해상 풍력 용량을 50GW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최근 목표치를 30GW로 낮췄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50여 년 만에 원자력 에너지 용량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에너지 안보 이슈와 AI 개발 수요가 부각되면서 재생에너지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엿보인 정책 전환이다.
네덜란드 원전은 1973년 제일란트주 보르셀에 지은 활성 원자력 발전소 1기뿐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는 네덜란드 총발전량의 1~4%에 불과해 유럽 주요국 중 가장 적다. 네덜란드는 2050년까지 발전용량 1000~1650메가와트(㎿) 규모의 원전 최대 4기를 추가로 건설해 2050년에는 전체 전력 생산량의 15%를 원자력이 담당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신규원전 4기 건설 정부 예산도 기존 45억유로에서 지난해 140억유로로 늘렸다. 소피 헤르만스 네덜란드 기후녹색성장부 장관은 2025년 2월 의회 서한을 통해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해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준비, 건설계약 체결, 발전소 운영 등의 역할을 할 지주사 설립 계획을 공유했다.
덴하그=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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