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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낳는 거위였는데…K-면세점 신화는 어떻게 무너졌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입력 2026-02-02 09:14   수정 2026-02-02 09:15



한국 면세점이 현재 생존을 걱정해야 할 만큼 최악의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 등 국내 주요 면세점 네 곳 가운데 세 곳이 지난해 적자를 냈습니다. 3분기 누적 기준 신라의 영업 손실액은 267억원에 달했어요. 같은 기간 신세계는 94억원, 현대는 19억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롯데가 유일하게 흑자를 냈는데 장사를 잘해서가 아니라 희망퇴직을 받고 마케팅 비용을 줄여서 거둔 구조조정의 결과였어요. 문제는 전년도인 2024년에도 적자였다는 겁니다. 롯데는 그해 1000억 원 넘는 창사 이래 최대 손실을 냈고 신라, 신세계, 현대 또한 수백억원의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럼 세계 면세점 산업이 전반적으로 안 좋은가 하면, 또 그렇진 않았어요. 세계 최대 면세점인 스위스 아볼타는 작년 3분기 누적으로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10억6500만 스위스프랑, 약 1조6500억원에 이르렀어요. 3위 프랑스 라가르데르도 비슷했어요. 작년 3분기에 사상 최대 매출인 16억9500만 유로, 2조5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요약하면 한국 면세점은 일시적인 부진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겁니다. 한때 세계 최정상을 넘봤던 한국 면세점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독특한 사업모델 시내 면세점


한국 면세점의 강점은 시내 면세점에 있었습니다.

롯데의 경우 국내외에서 22개 매장을 현재 운영 중인데 명동본점 매출이 압도적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명동본점 한 매장에서만 매출을 연 4조~5조원씩 올리기도 했어요. 현재 롯데면세점 전체 매장에서 올리는 매출보다도 많았습니다. 신라도 싱가포르 창이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같은 곳에 입점해 있기도 하지만 주력 매장은 단연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내 시내 면세점이었어요. 신세계, 현대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대도시를 가도 도심 한복판에 백화점 같은 큰 건물을 통째로 면세점으로 쓰는 곳은 잘 없습니다. 해외 도시로 여행을 가면 백화점, 아울렛에서 주로 쇼핑하고 공항에 가야 비로소 면세점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해외 면세점 대부분은 공항, 항만, 국경에 면세점을 두고 있어요. 세계 1위 면세점 아볼타의 경우 70개국, 1000여 개 지역에서 510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입니다. 고객이 굳이 면세점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탈 때 아볼타 매장을 지나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지나치는 사람이 한 해 23억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소수의 시내 면세점 매출에 의존하는 한국 면세점과는 사업 모델이 다릅니다.

이런 독특한 시내 면세점 모델은 ‘가격’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200만원짜리 핸드백을 150만원에 살 수 있다면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습니다. 반대로 가격 메리트가 없다면 굳이 방문할 이유가 없죠. 요즘이 딱 그런데요.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 시대에 들어서자 가격 메리트가 확 떨어졌어요.

시내 면세점에서 100달러짜리 향수를 사면 요즘 15만원 가까이 내야 합니다. 인근 백화점이나 올리브영, 혹은 쿠팡에서 할인 쿠폰 먹이고 카드 할인 받으면 더 저렴할 수도 있어요. 더구나 백화점에서 사면 바로 들고나갈 수도 있고 산 금액의 일부를 상품권으로 돌려받기도 해요.

반면 면세점은 우선 가는 것부터 번거롭죠. 여기에 여권 보여줘야지, 비행기 표 정보 입력해야지, 공항 인도장에서 나중에 받아야 하지 여러모로 불편합니다. 더 비싸고 불편한데 갈 이유가 딱히 없는 것이죠.

실제로 요즘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시내 면세점이 아니라 다이소나 올리브영, 성수동 편집숍으로 달려갑니다. 여기선 그 자리에서 바로 세금 돌려주는 ‘택스 리펀드’도 해줘요.

◆중국·명품 의존도 높아


한국 면세점의 독특한 사업 모델은 ‘장소’에만 있지 않아요. 공략하는 타깃 고객도 달라요.

한국 면세점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10여 년 전이었어요. 중국인 관광객이 밀려 들어올 때였죠.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같은 한국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영화까지 한류 열풍이 불었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여행사 단체 패키지 관광 형태로 많이 한국에 왔는데 이 단체 패키지 일정 안에 면세점 방문이 꼭 들어가 있었어요. 여행사는 패키지 여행 단가를 낮추고 면세점은 손님을 유치한 ‘윈윈’ 전략이었죠.

덕분에 한국 면세점들은 엄청난 호황을 맞았어요. 2013년 6조원대 매출이 2016년 12조원대로 급증합니다. 그러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을 맞았어요. 성주 골프장 부지에 미국의 고고도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 정부가 엄청나게 반발했어요. 한국 드라마, 영화 상영이 금지됐고 한국 여행 상품 판매 금지 조치도 내려졌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해요. 한국 면세점 매출이 오히려 증가한 겁니다. 2017년 14조원, 2018년 18조원, 2019년 24조원을 차례로 넘어섰어요. 중국인 보따리상 ‘따이궁’이 유커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었어요.

따이궁은 한국 면세점에서 면세품을 구매한 뒤에 중국으로 돌아가 다시 파는 사람들을 뜻해요. 한국 여행을 못 가게 된 중국인을 대신해서 구매해 주는 역할을 했어요.

그러다 ‘코로나 사태’가 2020년에 터졌어요. 면세점은 이때 완전히 망하는 줄 알았어요. 해외 관광객이 뚝 끊겼으니까요. 근데 따이궁이 살렸어요. 2020년 15조원대로 떨어졌던 한국 면세점 매출은 이듬해인 2021년 17조원대로 회복했어요. 따이궁이 한국 면세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육박했어요. 그러자 면세점들은 경쟁적으로 따이궁 유치에 나섰고 이 탓에 리베이트, 일명 ‘송객 수수료’가 폭증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1조원대 수준이던 게 2021년 3조원을 훌쩍 넘었고 2022년에는 7조1000억원 수준에 이르렀어요. 100만원을 사면 50만원을 돌려줄 정도였어요.

결국 지금의 적자 구조 원인도 따이궁 의존도가 높은 영향이 커요. 한국 면세점이 뒤늦게 리베이트 줄이고, 개별 관광객 위주로 마케팅 전략을 다시 짜고, 공항 면세점 매장 확보에도 나섰지만 당장 효과가 나오진 않고 있어요.

판매하는 상품에도 차이가 있어요. 한국 면세점의 주력 상품은 화장품입니다. 따이궁이 한창 많을 땐 LG생활건강의 ‘후’나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같은 상품이 재고가 부족할 정도로 잘 팔렸어요. 여기에 입생로랑 립스틱 같은 명품 브랜드 화장품도 한 번에 수십 개, 수백 개씩 사갔습니다. 여기에 해외 명품 브랜드도 많이 팔렸습니다. 특히 구찌, 루이비통, 샤넬 같은 중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브랜드 판매가 좋았어요. 시내 면세점에 가면 화장품과 명품 브랜드 위주로 매장이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서구권 면세점은 달라요. 아볼타의 작년 상반기 기준 매출 구성을 보면 식음료(F&B) 매출이 면세 매출과 비슷한 35%에 달해요. 또 편의점이나 서점, 여행 필수 상품을 판매하는 일반 판매 비중도 30%에 이릅니다. 여행객은 환율이 올라도 공항에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물 사죠. 아볼타는 또 고속도로 휴게소, 기차역 같은 곳에서도 식당, 편의점을 운영하며 안정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있어요. 라가르데르 역시 비슷합니다. 최근 실적 개선의 배경으로 회사 측은 여행 필수품과 다이닝 부문의 성장을 꼽았어요. 실제 라가르데르는 ‘릴레이’란 이름의 편의점을 런던 히스로공항에 입점시키는 등 이 분야의 사업 확장에 주력하고 있어요.

◆LVMH, 中 면세 사업권 넘겨


결론적으로 한국식 면세점 사업 모델은 지속 가능하기 어려워요. 단순히 환율이 올라서, 경기가 안 좋아서 실적이 안 좋은 게 아닙니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어요. 세계 최대 명품 기업인 LVMH가 운영하는 면세점 DFS가 홍콩, 마카오 같은 중화권 면세 사업을 통째로 중국 국영 면세점 CDFG에 넘기기로 했어요. 대신 CDFG의 지분을 받기로 했죠. 중국인을 상대로 한 영업이 더 이상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한국 면세점도 중국 의존도를 확 낮추고, 명품과 화장품을 대신할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해요. 결국 실제 고객인 여행자들이 원하는 것을 팔아야 할 겁니다. 그 수단이 편의점이 될 수도 있고, 카페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새로운 것일 수도 있어요. 입지 또한 여행자가 오가는 공항, 터미널 등으로 더 확장해야 하겠죠. 지금 변하지 않으면 도심 한복판의 화려했던 시내 면세점들은 유물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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