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세 직장인 A씨는 그동안 여윳돈을 정기예금으로 굴린 ‘예테크’(예금+재테크)족이다. 주식은 손실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고, 투자보다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이 안전하다고 여겨서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주식시장이 들썩이자 생각이 바뀌었다. A씨는 리스크가 큰 개별 종목 대신 지수에 분산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했다. A씨는 “주가가 이렇게 오르는데 보수적으로 예금만 하는 게 맞는지 고민됐다”며 “주식은 잘 모르지만 증시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이라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례 없는 증시 초호황이 은행 창구 풍경마저 바꾸고 있다. 연 2~3%대 ‘쥐꼬리’ 이자에 실망한 A씨와 같은 고객이 예·적금에서 시선을 거두고 주식시장에 간접 투자하는 펀드에 뛰어들면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해 펀드 판매 잔액은 약 83조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보다 14조원가량 증가한 규모로 2019년(약 81조원)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다. 판매 잔액이 20조원에 달한 주식형 펀드가 역대급 실적을 이끌었다.
역대급 증시 활황에 올라타고 싶지만 개별 종목에 투자하기엔 부담을 느끼는 개인이 주로 펀드에 가입하는 분위기다. 증권사 고객보다 보수적인 투자 성향상 이미 증시가 고점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반영된 선택이란 평가가 많다. 은행 고객들의 이 같은 성향은 코스피지수 등락을 추종하는 인덱스펀드 가입이 가장 활발한 현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중은행 A지점 관계자는 “영업 현장에선 반도체, 로봇, 방위산업 등 야심 차게 밀고 있는 업종 테마가 있지만 정작 가장 많이 팔리는 건 인덱스펀드”라며 “코스피200지수 자체에 주가 상승률이 높은 대표 종목이 모여 있다 보니 비교적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은행 고객의 변화는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5대 은행의 지난해 12월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총 208조7269억원으로 2024년 말(178조7906억원)보다 29조9363억원 불어났다. 다양한 주식형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투자가 가능한 개인형퇴직연금(IRP·15조1억원)과 확정기여형(DC형·7조9720억원)의 적립액이 급증한 영향이 컸다. 은행권 관계자는 “증권사로 퇴직연금을 옮기는 은행 고객이 적지 않음에도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신규 고객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은행 고객의 이 같은 변화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코스피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20.6% 뛰며 이날 종가 기준으로 처음 5000을 넘어섰다. 증시로 옮겨가는 투자 자금이 거듭 증가한 여파로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26일 932조3494억원)은 올해 들어 6조9368억원 줄었다. 투자 대기 자금 성격인 요구불예금(641조2762억원)은 32조7321억원 급감했다.
은행들은 수신 고객 이탈을 우려하면서도 증시 활황의 파급효과로 당분간 실적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펀드, 연금 등 관련 사업 수수료 이익이 불어나는 가운데 대출자산 증가와 금리 상승으로 이자이익도 증가할 수 있어서다. 증권가에선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이 지난해 사상 최대인 18조10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전망치는 18조8300억원이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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