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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칼럼] 5000 고지에서 보니 비로소 분명해지는 것

입력 2026-01-27 17:45   수정 2026-01-28 00:18

높은 곳에 오르면 그제서야 시야가 넓어지고 맑아진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코스피 5000’이라는 차원이 다른 고지에서 내려다보니 모호했던 것들이 분명해진다. 성장이 어떤 경로로 달성되는지, 진보는 어떤 축적의 결과물인지 냉혹한 숫자로 감각된다.

경제의 창(窓), 주식시장을 통해 알게 되는 성장과 번영의 비밀은 오랜 통념과 상당히 다르다. 아니 정반대에 가깝다. 비효율적·약탈적이라며 일각의 맹비난에 시달려온 ‘오너 경영’의 강력함에 우선 놀라게 된다. 기념비적 상승장을 이끈 ‘톱 6’를 꼽자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다. 하나같이 강력한 오너십이라는 K자본주의 특성을 내재화한 기업이다. 이들이 한국을 프리미엄 국가로 이끌 것이란 두근거림이 코스피를 미답의 경지로 이끌었다.

코스피 5000은 한국이 AI 대전환의 중심부로 진입 중이라는 기분 좋은 방증이다. 반면 비슷한 제조강국이지만 오너십이 약한 독일, 일본은 주변부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오너 경영 폐해는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최악의 오너 경영과 최고의 전문경영인 사례를 비대칭적으로 비교해오지 않았는지 돌아볼 때다. 한강의 기적, IT 강국에 이어 AI 혁명까지 삼세번째 성공신화를 써내려간다면 일방적 오너 경영 폄하는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편견, 선입견을 앞세운 재벌 악마화도 짚어볼 주제다. 한국 기업집단을 지속성장에 역행하는 ‘기형적 체제’로 싸잡는 관성이 적잖다. 그러나 코스피의 기록적 진군은 K거버넌스가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작동 중임을 웅변한다. ‘피지컬 AI·로봇 제국’ 도약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현대차에 환호가 쏟아지는 상황이 잘 보여준다. 구글·소프트뱅크가 포기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해 ‘아틀라스 모멘트’라는 전율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오랜 시간 구축해온 모빌리티 계열사 간 기술·자원 융복합 인프라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기업집단과 지배주주를 사실상 해체하는 쪽으로 매달리는 시리즈 상법 개혁이 방향 착오인 이유다.

한국식 수직·수평 계열화 방식은 해외로도 확산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성공 문법이야말로 K자본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는 자동차(테슬라) 우주·통신(스페이스X) 로봇(옵티머스) 생명공학(뉴럴링크) 인공지능(xAI) 소셜미디어(X) 터널건설(보링컴퍼니) 등 여러 계열사를 엮어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낸다. xAI의 인공지능 그록을 테슬라와 옵티머스 ‘두뇌’에 심고, 스페이스X의 알고리즘을 자율주행 설계에 적용하는 식이다. 이런 유연성이 시너지를 넘어 기하급수적 효율을 창출한다.

구글도 4년 전 하드웨어로의 사업 다각화를 선언했다. 이후 자율주행 선두주자가 됐고 로보택시 생산도 가시권이다. 증강현실(AR) 안경 등 미래 단말기 경쟁에도 뛰어든 덕분에 엔비디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시총 기준)로 가치 있는 회사로 등극했다.

코스피 5000 등정을 복기해 보면 주주환원이 절대 가치가 아니라는 점도 손쉽게 확인된다. 삼성전자는 10년간 자사주 70조원어치를 소각했지만 2024년 말 ‘4만전자’로 추락했다. 불과 1년여 만에 ‘15만전자’로 명예 회복에 성공한 건 HBM, 파운드리 등 본업에 충실한 투자 덕분이었다. 현대차 주가 궤적도 비슷하다. 2024년 4조원의 대규모 주주환원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1년 넘게 내리막을 달렸다. 보스턴다이내믹스를 1조원에 인수하는 5년 전 결단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각광은 언감생심이다. 주주환원은 확대해야 하지만, 투자를 희생시키는 과속은 최악의 선택이다.

주주자본주의 허실도 저울에 올려 볼 때다. ‘이사회는 주주를 위해 일하는 조직’이라는 명제는 불완전하다. 이사회는 주주에 복종하기보다 회사 미래를 위해 결단하는 기구다.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때 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은행 차입이 가능한데도 주주들에게 리스크를 떠넘겼다’며 이사회 결정을 수준 이하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빠르고 저렴하다는 점에 착안한 이사들의 유상증자 선택은 회사와 주주 모두에게 초대박 수익을 안겼다. ‘기업은 정부가 아니고, 주주총회는 의회가 아니다.’ 회사법 선진국 독일의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쿨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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