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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 늦추는 ‘롱제비티’ 韓 상륙 “CEO끼리 소개…부유층 몰린다”

입력 2026-02-06 17:59   수정 2026-02-06 18:18

질병이 발생한 뒤 치료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신체 상태를 미리 분석해 질병을 예방하는 '기능의학'이 고소득층 환자들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도입된 기능의학이 국내 개원가에서도 가정의학과·피부과 등을 중심으로 정착하는 추세다. 의료업계에서는 개원의 증가로 인한 경쟁 과열과 불면증·면역 질환 등 본질적인 건강 문제를 겪는 환자들이 증가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의원급 병원을 개원한 일반의 수는 2022년 4만8584명에서 2025년 5만4108명으로 약 11.4% 증가했다. 2024년 한 해에만 759곳이 개원해 5년 새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련병원 교수와 개원의 임금격차에 더해 의대증원과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벌어진 후 의사들의 개원가 쏠림은 여전한 추세다.

'개원 러시'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기능의학이 병원의 안정적인 수익 모델이자 개원가의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A 산부인과에서는 기존 산부인과 진료와 함께 항산화력 검사, 모발 미네랄 검사, 장내 세균총·환경호르몬 검사 등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B 산부인과에서는 '해장주사', '힐링포션', '명품주사' 등 마케팅성 명칭을 붙인 수액 처방도 등장했다. 기능의학 검사와 처방은 대부분 비급여에 해당해 가격 통제를 받지 않는데다가, 이미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예방과 건강 증진에 중점을 둔 치료를 하기 때문에 고소득층 환자가 주로 찾는다는 설명이다.
피갈이·위 보톡스...'관리형 의료' 성행
서울 압구정동의 기능의학 클리닉 ‘닥터 한수민의원’은 눈에 띄는 간판이나 적극적인 홍보 없이도 예약이 수개월 뒤까지 밀려 있다. 환자 대부분은 대기업 오너가, 기업 최고경영자(CEO), 고액 자산가, 미용·패션 인플루언서 등 상위 자산층이다. 병원 관계자는 "광고를 하지 않아도 대표들끼리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의 대표 프로그램은 혈액 약 80cc를 채혈해 자외선을 통과시킨 뒤 다시 체내로 주입하는 '포톤 테라피(피갈이)'다. 15분 코스에 1회 비용은 30만~40만원 선이다. 병원 측은 유럽과 미국에서 수십 년 전부터 활용돼 온 치료법으로, 피로 회복이나 숙취 해소를 기대하는 기업가들이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포톤 테라피 외에도 위내시경 보톡스, 줄기세포 치료, 근육 강화 프로그램 등이 개인 건강 상태에 따라 결합된다. 검사비를 포함하면 월평균 의료비는 100~500만원에 상당한다. 한수민 원장(46)은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 주사보다 위내시경 보톡스가 더 효과적이라고 느끼는 환자들이 이곳에 돈을 쓴다"며 "이들은 치료가 아니라 관리를 받으러 온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웰케어의원’ 역시 기능의학을 기반한 검사와 치료를 제공한다. 혈액·뇌파·자율신경계 검사뿐만 아니라 '마이크로바이옴' 검사나 유전체검사 등을 활용해 인체를 정밀하게 검사한다. 이를 바탕으로 맞춤 영양제나 약물 등을 처방해미리 질병을 예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김경철 원장(55)은 "불면증과 만성피로를 겪고 있는데 다른 병원 검사에서는 정상인 환자들이 기능의학적 접근을 위해 찾는다"며 "비용이 조금 들더라도 기능의학을 선호하는 환자 또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수명 연장 치료'...개원가 새로운 먹거리 될까
이 같은 '상위 1% 전용' 의료 소비 방식은 한국에서 갑자기 등장한 현상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관리형 의료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롱제비티', 즉 질병 치료가 아니라 건강한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의료 모델이다.

미국에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컨시어지 메디슨(Concierge Medicine)'이 확산되기도 했다. 연회비를 내면 24시간 주치의 접근, 전문의 즉각 연결, 전신 MRI·CT·관상동맥 검사, 유전자 분석, 운동·식단·수면 관리까지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회비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도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부유층을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의료·컨시어지 메디슨 시장은 2026년 약 36조2000억 원에서 2031년 약 55조8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기능의학이 독립 진료과로 분리되기보다는 기존 전통 진료과의 보완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가정의학과·내과 의사들이 기능의학 교육을 이수해 진료에 접목하거나, 류마티스내과·소화기내과 등 만성·복합 질환을 다루는 전문과와 팀을 이뤄 환자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진료과목에 가리지 않고 확장성이 넓은 기능의학과 개원의 증가현상이 맞물려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향의 변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에서 기능의학을 도입한 의료기관은 아직 소수지만 점진적인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기능의학회에 따르면 현재 기능의학 치료를 도입한 의원은 약 170여 곳 수준이다.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외과 등이 주된 도입 과목으로, 수액치료, 음식 알레르기 검사, 장내 미생물 분석 등이 대표적이다.

고기동 가천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기능의학은 기존 의학에서 답이 나오지 않는 환자에게 시도해볼 수 있는 진료"라며 "정규 의료가 충족하지 못한 미충족 수요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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