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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걸려 합격했는데"…전문직 취업 한파에 '눈물' 쏟은 이유 [이슈+]

입력 2026-02-01 14:29   수정 2026-02-01 15:32

"이제 문과는 자격증만으로는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각자 살길 찾아야 합니다."

"전문직 준비할 생각으로 취업 준비 안 했는데 상황이 예전만큼 좋은 것 같지 않아 막막해요."

"예전에는 역대급 호황이어서 합격만 하면 다 큰 회사 들어갔는데 불과 몇 년 만에 이 난리가 난 게 믿기지 않네요. (서울 상위권 대학 커뮤니티)"

한때 합격만 하면 '억대 연봉'이 보장된다고 여겨졌던 문과 전문직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세무사·회계사·변호사 등 대표적인 전문자격 직군에서 합격자들이 실무 수십처를 찾지 못하거나 채용 문이 좁아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자격증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불안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인 세무사 준비생 임 모씨(24)는 "요즘 주변에서 AI 때문에 문과 전문직 신입을 거의 안 뽑는다고 난리"라며 "시험 준비 중인데 더 늦어지면 취업이 더 어려워질까 봐 조급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게 자격을 따도 신입 채용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면 어떡하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회계사 준비생 이모 씨(26)도 "매년 미지정이 늘어나는 게 정말 문제"라며 "공부를 계속하려면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어야 하는데, 내가 이걸 진짜 하고 싶은 건지 잡생각이 많아진다. 합격하고 나서 시장이 더 침체해 있을까 봐 겁이 난다"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수습 갈 곳 없어 무급으로"…세무사 합격생들 '자리 절벽'




실제 시장에서는 '공급 과잉'과 '자리 부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세무사의 경우 지난해 합격자가 올해까지 수십처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면서 관련 기관에서 직접 일자리 매칭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5년간 공부한 끝에 세무사에 합격한 이모 씨(30)는 합격 후에도 수습할 세무사 사무실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 씨는 "확실히 수습 세무사를 채용하는 곳이 줄었다고 느낀다. 동기 중엔 12월 말까지도 못 구하다가 1월에 겨우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었다"며 "수험생은 늘었는데 시장에서 자리가 부족해진 느낌이다. 예전엔 '개업하면 된다'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요즘은 개업도 어렵다는 얘기가 많다"고 했다.

이어 "공공기관인 세무서에서 교육받을 수도 있지만 수습 기간이 무급이라, 결국 유예하거나 버티는 경우도 생긴다."며 "나도 예전에 인턴 경험이 있었던 곳이 아니면 수습을 구하기 더 어려웠을 거다. 결국 그 동기는 세무서에 들어간 걸로 안다"고 했다.

수습 자리는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는데도 합격자는 매년 비슷한 규모로 쏟아지고 있다. 세무사 최소 합격 인원은 올해도 700명으로 유지됐다. 최근 5년간 합격자 수 역시 2021년 781명, 2022년 708명, 2023년 718명, 2024년 715명, 2025년 728명으로 큰 변화 없이 700명대를 이어가고 있다.
◇'미지정 회계사' 급증……올해 누적 1000명 전망

회계사 업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회계사 시험 합격자들이 늘면서 실무 수습 기관을 배정받지 못한 '미지정 회계사'가 급증하고 있다. 미지정 회계사는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했지만, 정식 회계사로 활동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실무 수습 기관 배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국회계학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합격자 1200명 중 10월 22일 기준 수습기관에 등록된 인원은 338명(28%)에 불과했다. 2024년에는 수습기관을 찾지 못한 합격자가 114명 수준이었지만, 업계에서는 올해 미지정 회계사가 누적 1000명에 달할 수 있다는 추정까지 나온다.

이에 공인회계사 시험 경쟁률도 최근 소폭 하락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6년도 공인회계사 1차 시험 접수자는 1만4614명으로 경쟁률은 5.22대 1이었다. 지난해(5.70대 1)보다 낮아진 수치다.

선발 예정 인원은 2800명으로 전년 대비 100명 감소했음에도 경쟁률이 오히려 떨어졌다. 지원자 수는 2024년 1만6914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1만6535명, 올해는 약 2000명가량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선발 인원 확대와 축소 등 제도적 조정 과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몇 년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등 회계 개혁으로 인력 수요가 폭증하자 정부가 선발 인원을 크게 늘리며 '열풍'이 불었지만, 경기 둔화와 인력 포화가 동시에 오면서 취업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었다는 것이다.
◇변호사도 ‘AI 활용 능력’이 생존 조건으로

여기에 AI 도입은 전문직 시장의 불안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73%가 "향후 공인회계사 업무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중 51%는 '10% 이상 감소', 22%는 '10% 이내 감소'를 예상했다. 연구진은 "회계 시장의 성장성과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따른 직무 환경 변화를 장기적으로 종합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4대 회계법인에 근무 중인 저연차 회계사 최모 씨(29)도 "회사에서도 AI를 많이 쓰고 있다. 체감된다"며 "이미 취업했는데도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떨지 생각이 많아진다. 회계감사만으로 경쟁력이 계속될 것 같진 않다. 결국 전문직도 AI를 잘 써야 살아남는 시대"라고 말했다.


실제로 회계법인들은 AI 조직을 신설하며 업무 자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이미 2023년 10월 생성형 AI 전담 조직 'Gen AI 팀'을 출범했고, 자체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링고(Lingo)'를 회계·법률 분야 번역 업무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정KPMG도 지난 28일 생성형 AI 기반 'ESG 리포팅 어시스턴트'를 도입해 컨설팅 업무 효율화를 추진 중이다.

변호사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빅펌들 역시 채용을 줄이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대형 로펌에 다니는 4년 차 변호사 이모 씨(31)는 "지금 안 망하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AI가 뉴스레터나 해외 자료, 판례 리서치를 한 번에 찾아주니 어쏘 변호사를 예전만큼 많이 뽑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문과 전문직 합격=취업 공식 완전히 깨졌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직도 더 이상 '면허 산업'이 아니라 시장 경쟁과 기술 변화 속에서 재편되는 과정이라며 공급 조절과 함께, 업무 영역 확대와 새로운 역할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소재 대학 세무학과 교수는 "세무사나 회계사 같은 전문직이 더 이상 자격증만 따면 평생이 보장되는 면허 산업으로 남아 있지 않다"며 "과거에는 합격이 곧 취업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공급이 늘어났지만, 업계가 신규 인력을 흡수할 여력이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성형 AI 도입으로 단순 신고·기장, 자료 정리 같은 업무는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앞으로는 자격 보유 여부보다 AI를 활용해 고부가가치 자문으로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며 "선발 인원 조절과 함께 세무·회계 인력이 국제조세나 ESG 공시 등 새로운 분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업무 영역을 넓히는 정책적 설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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