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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동화는 다 거짓말이었다

입력 2026-02-03 08:52   수정 2026-02-03 10:01

‘고전’에 대해 자주 잊게 되는 사실 중 하나가 있는데,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소위 ’명작 동화’들 또한 엄연히 고전에 속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한 번쯤 꺼내 보았을 동화 전집은 대부분 오랜 시절 구전과 기록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진, 그야말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동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동화 전집’이라 불리는 시리즈에는 때때로 동화가 아닌 소설이나 희곡마저도 동화의 형태로 각색되어 제목을 올린다. 어찌 보면 우리는 동화라는 형태로 고전을 처음 접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의 동화라고 해도, 수차례의 구전과 각색, 편집과 번역을 거치며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게다가 ‘happily ever after(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일반적인 동화의 마지막 문장은 이후의 독자와 이야기꾼들로 하여금 그 이후를 상상하도록 만들었다. 동화의 뒷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일 또한 오랜 전통이다. 동화는 독자의 시대와 위치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하며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는, 가장 동시대적인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화의 재해석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어린이 공연이다.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에서 동화는 그 친숙함 덕에 흥행을 보증하는 핵심 요소다. 물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인플루언서를 전면에 내세운 공연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전히 동화 기반의 공연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다. 말이나 글로 전해진 동화가 무대 위에서 배우의 몸을 통해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창작이지만, 최근의 창작자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 관객의 시선에서 이를 재해석해 낸다

올해로 22번째를 맞는 아시테지 겨울축제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 시즌에, 어린이·청소년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예술을 선보이는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지난 12월 말에 시작해 1월 초에 또 한 번의 막을 내렸다. 이번 축제에서도 여러 창작자의 작업이 선보여졌는데, 특히 ‘아기돼지 삼형제’와 ‘플란다스의 개’, 그리고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동화가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극장을 찾은 어린이 관객들을 만났다.

김다영의 《흔들리는 집》(2026. 1. 10~11. / 아르코꿈밭극장)은 교훈적인 이야기의 대표주자인 ‘아기돼지 삼형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뒤집는다. 빠른 속도로 완성된 첫째 돼지의 지푸라기 집과 둘째 돼지의 나무집은 늑대에게 파괴되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지은 셋째 돼지의 벽돌집이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다. 이러한 결말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를 가르친다. 《흔들리는 집》은 그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또 다른 돼지의 이야기다.



막내 돼지의 성공 신화 이후 단단한 집을 지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후손들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도록 온몸을 꽉 옥죄어올 정도로 견고하고 네모난 집을 고집한다. 아파트 공화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루’는 그 갑갑함을 견디지 못하고 허술하고 울퉁불퉁하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집에서 살아간다. 그의 집은 쉽게 무너지지만, 그만큼 쉽게 다시 지어 올릴 수 있다. ‘루’는 바깥으로부터의 바람에 자신을 맡긴 채 흔들면 흔들리고,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살아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집을 완성한다. 처음엔 그런 ‘루’가 게으르다고만 생각했던 마을의 대장 돼지 ‘브릭’ 또한 결국엔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떠다니는 삶에 매료되어 흔들리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흔들리고 무너진 후에 다시 일어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러한 재해석은 한동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개그맨 박명수의 ‘중.꺾.그.마’,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 곧 강한 것’이라는 상식을 넘어, ‘무너진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자세’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한 교훈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한 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네모난 종이 상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찢고 접고 다시 세우는 모습은, 열기와 습기, 충격에 약한 종이라는 재료의 속성을 통해 이야기의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아시테지의 신작 개발 프로그램인 ‘K-PANY 창작꿈밭’을 통해 창작되어 쇼케이스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더 많은 관객과 만날지 기대가 된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넘어 비-인간 동물과 식물, 나아가 로봇과 같은 사물들의 주체성을 탐색해 온 정진새 작가가 이끄는 극단 문은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널리 알려진 ‘플란다스의 개’를 재해석한다. 《플란다스의 미친 개》(2026. 1. 3~4. / 한예극장 1관)는 평생 자신이 두 눈으로 보기를 꿈꾸었던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숨을 거둔 네로와 파트라슈에게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는다. 빈곤과 불평등의 현실을 꼬집었던 원작은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이라는 작품 속 문장으로부터 착안해 전쟁이라는 폭력의 현실 속으로 작품의 중심을 전환한다.

전쟁에 몰두했던 나폴레옹은 모든 사람과 자원을 동원하던 나머지, 어린이와 동물들마저도 활용하기 시작한다. 네로와 파트라슈도 소년군과 동물구조대에 투입되고, 파트라슈는 나폴레옹의 목숨을 구해 훈장을 받을 만큼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파트라슈는 그 능력으로 인해 점점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며 착취당하고, 네로는 전쟁의 폭력적인 모순 앞에 고통받는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위인을 만들어 낸 ‘영웅 서사’가 결국엔 누군가의 희생과 폭력으로 점철된 전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특히나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그리고 나날이 더욱 잔혹해지고 있는 국제 질서 속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여기에 더해 ‘인명피해’라는 말로 표현되었던 전쟁의 참혹함을 더 확장한다.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지만, 그 피해는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쑥대밭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그 어떤 생명도 자신을 지켜낼 수 없으며, 심지어 사물들은 완벽하게 파괴되어 잿더미로 남는다. 하지만 전쟁의 피해는 ‘인명피해’와 그것을 제외한 ‘재산피해’로만 계산된다. 그리고 이것은 비-인간 존재를 대하는 인간의 일상적인 태도가 극단화된 결과라는 점을 지적한다. 고통받는 파트라슈를 보며 네로는 군인들을 향해 동물들이 원치 않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강변하지만, 군인은 그에 맞서 되받아친다. 네로의 우유배달을 함께할 때는 정말로 동의를 받은 것이 맞냐고 말이다. 전쟁과 노동을 동일선상에 놓을 순 없겠지만, 양쪽이 전제로 하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일맥상통한다는 비판이다. 이 말에 파트라슈를 향한 자신의 태도를 성찰하는 네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 모든 문제의 책임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지 되묻게 된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비록 풍자소설이지만, 소인국과 거인국, 마인국 등의 독특한 세계관이 강조된 동화의 형태로 쉽게 접하게 되는 작품 중 하나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몸짓, 그리고 소품의 활용으로 무대 위에서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내는 극단 하땅세는 소인국과 거인국이라는 설정을 어린이들의 일상에서 탐색한 《걸리버 여행기: ZOOM IN OUT》(2025. 12. 27~28. / 대학로극장 쿼드)을 선보였다. 이 공연에서는 소인국과 거인국이라는 설정이 단순히 가상의 어떤 세계에서 이루어진 허구에 국한되지 않고, 환경이 우리를 위축시키거나 때로는 갑갑하게 옥죄어오는 순간의 감각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가족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 집 안에서 주인공은 마치 소인국의 걸리버 같은 존재가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혼이 날 때면 한없이 작아져 어딘가에 숨고만 싶은, 거인국에 떨어진 기분을 경험한다.

무대 위에서 그 어떠한 CG도 활용할 수 없는 배우의 몸은 어떻게 크고 작아질 수 있을까? ‘ZOOM IN OUT’이라는 부제처럼 카메라의 원근법을 무대와 결합한다. 무대 위에 카메라맨이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비추고, 배우들은 소품과의 거리를 절묘하게 활용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이 영상이 실시간으로 무대 뒤편에 비치면서 크기가 왜곡된, 마치 거인국이나 소인국에서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리고 핸드폰의 활용이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한다. 사전에 촬영해 둔 배우의 영상을 핸드폰으로 재생하고, 그 모습을 주변의 무대 소품들과 함께 촬영하며 영상을 송출한다. 핸드폰 크기로 작아진 배우의 몸과 무대의 소품이 하나의 스크린에 놓이면 그곳이 바로 거인국이 된다. 그렇게 배우의 몸은 스크린 안팎을 끊임없이 오가며 기발한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 작업은 지난해 초연 후 주요 연극상을 받은 동명의 작업을 어린이 관객을 위해 재창작한 것이다. 원작은 어느 청년의 워킹홀리데이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비좁은 자취방에서 살아가는 생활을 소인국의 모습으로, 해외로 나가 이주노동자로써 어려움을 겪게 되는 순간들을 거인국의 장면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 좋은 어린이 공연을 선보인 바 있는 극단 하땅세는 이러한 경험이 비단 어른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화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독자에게 나름의 의미로 다가가는 것처럼, 어린이극 또한 어린이 관객들만을 위한 공연이 아니다.‘어린이’라는 말은 결국 모든 관객을 아우른다는 포용성이라는 목표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어린이극이라는 말에 유치함을 연상할지 모르겠지만, 앞선 공연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이 가진 깊이는 여타의 공연을 능가한다. 어린이라는 존재는 성인과 생각의 방식과 관점이 다를 뿐, 부족하거나 미숙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대부분 1시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공연이 이루어지지만, 그 길이와 규모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아주 짧은 동화가 그 어떤 대하소설보다 큰 울림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관객은 정숙해야 한다’는 극장에서의 불문율을 깨고 어린이 관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에 답하고 추임새를 넣으며 때때로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객석에서 바라볼 때면 관객이 공연을 완성한다는 말이 그저 상투적인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어린이극을 함께해보기를 권한다. 왠지 모를 거부감을 넘어서면 또 다른 관극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동화처럼, 어린 시절 동화와 함께 성장한 우리의 세계가 다시 한번 요동치게 될지도 모른다.

박진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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