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방문한 미국 텍사스주 배스트럽에 있는 LS일렉트릭 배전솔루션 캠퍼스에선 빅테크로 향하는 ‘배선용 차단기’(MCCB)의 전압 검증 테스트 작업이 한창이었다. 모니터에 ‘합격’을 알리는 파란불이 켜지자 10여 명의 엔지니어가 고객사가 요구한 스펙에 맞춰 코일과 모터, 터치패널을 차례로 조립했다. 정용모 배스트럽 캠퍼스장은 “주문 물량의 80% 이상이 데이터센터용”이라며 “이름 있는 빅테크들이 앞다퉈 ‘선주문을 넣을 테니 먼저 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초고압 변압기에서 시작된 북미 지역의 ‘전력기기 슈퍼사이클’이 ‘배전반’(차단기·개폐기)으로 확대되고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각 가정과 공장에 닿게 하려면 일단 초고압 변압기를 통해 154킬로볼트(㎸)로 끌어올려 먼 곳까지 송전해야 한다. 그다음 배전반을 통해 전압을 66kV 이하로 낮춘 뒤 각 수요처에 분배한다. 이처럼 변압기와 짝을 이뤄 전력망에 들어가기 때문에 배전반 역시 ‘전력기기 슈퍼 호황’의 직접적인 수혜를 보는 것이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 중 배전반 분야 최강자는 LS일렉트릭이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AI) 붐’이 부를 슈퍼 호황을 예상하고, 2022년 미국 배전반 업체 MCM엔지니어링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4만6000㎡ 규모 부지에 배스트럽 캠퍼스를 조성했다. 배스트럽 공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MCM엔지니어링에서 온 차단기와 한국산 스위치를 조립해 캐비닛 형태의 배전반을 제작하는 일이다. 이 제품들은 미국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간다.
LS일렉트릭은 2030년까지 이곳에 2억40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차단기 공장과 배전반 완제품 공장도 세울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현지 생산·조립 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한국에서 배송할 때 12~16주 걸리던 납기가 2주로 줄었다”며 “올 1분기 배스트럽 공장의 차단기 생산라인에 대한 북미 안전 인증인 UL 인증 절차가 마무리되면 MCM엔지니어링 제품을 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생산한 차단기를 배전반에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배전반 시장은 변압기와 마찬가지로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AI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다 보니 이튼, 슈나이더일렉트릭, 지멘스, ABB 등 ‘빅4’만으론 수요를 맞추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에서 배전반을 생산하려면 UL 인증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진입장벽도 높다. HD현대일렉트릭도 최근 중저압 차단기 4종에 대해 UL 인증을 받았다.
국내 전력기기 업계는 빠른 납기와 한국·유럽에서 검증된 품질로 미국 빅테크 문을 두드리고 있다. LS일렉트릭은 지난해 xAI에 이어 북미 빅테크 두 곳과 추가로 배전반 공급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발 빠른 유지·정비·보수를 위해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댈러스와 애틀랜타에 거점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스트럽=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