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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1094억원 상속세 파기환송…"조세회피 형식도 실질적으로 따져야"

입력 2026-02-01 09:15   수정 2026-02-01 09:23



사망 직전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비상장 주식을 양도한 거래가 조세 회피 목적이었는지 충실히 심리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실질과세 원칙 관점에서 조세 회피 목적 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상속인 A씨 등 4명이 반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상속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판결 중 과세관청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이 소송은 A씨 유족이 상속재산을 신고한 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와 감사원 감사를 거쳐 70억여원의 세금을 추가로 내게 된 데 반발해 제기됐다. 유족은 A씨 사망 후 2016년 상속세 과세표준을 2057억7000만원으로 신고했다. 이에 따라 산출된 상속세는 1024억3000만원이었다.상속재산 가액에는 A씨가 사망 직전 말레이시아 에너지 회사 J사 주식을 매각해 받은 3648만3000엔과 A씨가 보유하던 L사 주식 1291억8000만원 등이 포함됐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통해 J사 주식 매각이 조세 회피를 위한 가장매매라고 보고, J사 주식도 상속재산 가액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J사 주식을 넘겨받은 회사가 조세회피처로 꼽히는 세이셸공화국에 급조된 유족 측 페이퍼컴퍼니였고, A씨가 매각 당시 병원에서 심정지 증상을 보이는 등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국세청은 L사 주식 평가액을 감액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나 감사원 지적에 따라 평가액을 930억9000만원으로 재평가했다. 최종적으로 국세청은 유족의 상속세 과세표준을 2094억8000만원으로 경정했다. 유족이 납부할 상속세는 1094억3000만원으로, 신고 당시보다 70억여원 늘었다.

쟁점은 A씨 사망 약 한 달 전 이뤄진 J사 주식 매각이 가장매매에 해당하는지 여부다.아울러 피상속인이 보유한 다른 비상장 법인 주식 평가에서 해외 자원 개발 사업과 연동된 ‘성공불융자금’ 채무를 부채로 공제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됐다. 성공불융자금은 위험이 큰 해외 자원 개발 등에 정부가 자금을 빌려주되 사업이 실패하면 상환을 면제해주고, 성공하면 원리금 외 특별부담금을 더 걷는 정책 지원 융자다.

1심은 상속인들 손을 들어줬다. 국세청이 ‘가장매매 무효’ 또는 ‘실질 귀속이 피상속인·상속인 측’이라는 과세요건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보고 주식 양도 부분에서 상속세 1094억여 원 부과처분 중 806억여 원을 초과하는 부분을 취소했다. 다만 성공불융자금 채무는 사업 수익(운영잔액) 발생 여부에 따라 상환 의무가 생기는 구조여서 상속 개시일 당시 종국적으로 부담이 확정되지 않은 불확정 채무로 보고, 주식 평가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도 1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 거래의 조세회피 목적 여부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실질과세 원칙은 사법상 가장행위로 무효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 형식·외관을 취한 조세회피 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원심이 과세당국의 ‘가장행위’ 주장을 단순히 계약의 사법상 효력(무효 여부)에 관한 주장으로만 받아들이고, 조세회피 목적의 외관인지까지 석명·직권 심리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법상 효력이 없는 가장행위뿐 아니라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 외관·형식으로 보인다면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근거로 들었다.

또 대법원은 A씨가 입원 상태에서도 주식매매를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조세회피 목적 외 합리적인 이유·동기가 존재했는지, J사 주식 가액이 1주당 1달러로 다소 이례적으로 산출된 경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추가 심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는 실질과세 원칙 및 석명권 행사, 조세 소송의 증명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성공불융자금 채무가 불확정 채무라 주식 평가에서 공제할 수 없고, 국세청의 신뢰보호 위반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원심 판단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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