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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X' 소리까지 들어"…녹음기 켜놓고 자리 뜬 직원 결국 [사장님 고충백서]

입력 2026-02-22 11:00   수정 2026-02-22 14:40


직장 내 괴롭힘 증거를 찾겠다며 녹음기를 켜놓고 자리를 비우는 방식으로 상사들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직원이 징역형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아무리 증거 확보가 목적이라도 법을 어겨가며 몰래 녹음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실제 괴롭힘 정황이 있었다며 실형을 내리지 않고 선처했다.
○녹음기 켜놓고 자리 뜬 직원..."통신비밀보호법 위반" 기소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은 최근 통신비밀보호법 등 위반으로 기소된 A씨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2020년 성남시의 한 중소기업에서 인사·회계·총무 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2021년 3월 퇴사를 앞두고 업무 인수인계를 하던 중 대표 B씨와 사라진 USB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A씨에게 제공된 업무용 USB에는 직원들의 인사 관련 자료들이 들어있었는데 외부 반출한 게 문제된 것. B대표의 딸인 부서장도 반환을 요구하면서 "즉시 반환하지 못하면 도난신고라도 하라"고 수차례 얘기했다.

A씨가 계속 반환하지 않자 부서장은 "도둑X"이라는 발언을 했고 모욕감을 느낀 A씨는 반격을 준비했다. 며칠 뒤 A씨는 자신의 책상 위에 휴대전화 녹음기를 켜둔 채 자리를 비웠다. 아침 시간대에서부터 오후 3시 20분경까지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다른 직원들의 대화를 모두 녹음한 것이다. 주인이 없는 자리 근처에서 대표와 이사는 A씨의 USB 반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 모든 대화는 A씨의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A씨는 이 대화가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상사들이 몰래 계획을 세운 결정적 증거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A씨는 이 파일을 고용노동청에 제출했고,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확인된다"며 회사에 개선지도가 내려오기도 했다. A씨는 또 '도둑X' 발언을 한 부서장을 모욕죄로 고소했지만,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되레 A씨가 USB에 저장돼 있는 직원들의 인적 정보 자료를 삭제해 회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이후 A씨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추가로 기소됐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몰래 녹음은 '양날의 검'

재판에서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하였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확보할 목적이었다"며 '정당행위'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는, 증거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방법으로 상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다른 방법으로 (괴롭힘을) 증명하기 어려운 긴급한 상황이었다고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체 녹음시간 및 녹음 장소, 대화 참여자의 수 등을 고려해도 녹음행위가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꼬집었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범행이었던 점, 실제로 대화 등을 참고자료로 제출한 고용노동부 진정사건에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확인되어 개선지도함'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오는 등 범행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일부 인정되는 점을 들어 선고를 유예했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의 증거를 잡기 위해 녹음을 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몰래 녹음'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대화 참여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보기에 당사자가 직접 참여한 녹음은 증거능력이 인정될 여지가 있지만,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장치를 두고 타인 간 대화를 수집하면 위법성이 강하게 인정된다.

결국 필수적인 경우가 아닌데도 직장에서 몰래 녹음을 함부로 하게 될 경우 기소는 물론 민사소송이나 징계까지 휩쓸릴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직장에서 비밀 녹음을 한 것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다(95다184). 대법원은 "동료 직원과의 대화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해 이를 토대로 진술서를 작성해 교부하고, 그 진술서가 동료 직원들에 대한 형사고소 사건의 자료로 제출되도록 한 행위는…직원 상호 간 불신을 야기해 직장 내의 화합을 해하는 것으로서 근무기강 확립과 품위유지의무에 위반돼 징계사유"라고 판시한 바 있다.

다만 그렇다고 녹음과 녹음 내용 공개를 무조건 금지하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직장 내 성희롱처럼 증인 없이 두 사람 만이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사건은 무조건 무단 녹음을 금지할 경우 이러한 증거를 입증하기가 곤란해 진다"며 "이 경우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신고자의 녹음과 녹음내용 공개를 무조건 금지하고 징계하는 것은 추후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처분이 될 수 있으므로 유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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