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기업들이 플라스틱 대체재로 종이를 쓸고 있지만 정책에선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종이 재활용율이 높은 국가에서 제지산업이 무너지면 한순간에 쓰레기 대란이 올 수도 있어요.”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4일 “탈플라스틱 흐름속에서 제지업계가 스스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생존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정작 탈플라스틱 정책 논의에선 묘한 무관심과 냉대로 종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반적으로 국내 제지업계가 여러 종이 제품을 만들때 주 원료인 천연 펄프보다 폐지를 더 많이 쓰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81%), 미국(60%) 등과 비교해 89%(2024년 기준)의 종이 재활용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제지사들이 100% 수입에 의존하는 천연 펄프 대신 폐지 중심의 종이 재활용에 집중해 기술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폐지 기반의 순환 구조 안에서 제지사들이 생존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정부의 종이 순환 산업에 정부는 시큰둥한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적극적인 산업 정책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환경부도 ‘종이는 알아서 재활용이 잘 된다’며 방치하고 있다는 게 홍 소장 의견이다.
최근 글로벌 규제 환경도 종이 제품 사용을 강제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EU에서 지난해 2월 발표한 PPWR(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에 따라 올해 8월부터 EU의 모든 제품 포장재는 감량, 재사용, 재활용 등 3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홍 소장은 “이걸 못 맞추면 수출을 못 하기 때문에 환경 규제가 아닌 사실상 무역 규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이 같은 강력한 정책적 개입이 거의 없었던 탓에 제지업계가 경쟁력을 위협받고 있다. 우유팩을 고급 화장지 원료로 재가공했던 삼정펄프는 지난해 12월 29일부로 평택공장 원지 및 완제품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저가 수입산 펄프 공세로 인한 수익성 악화, 높은 인건비 문제, 우유팩 재가공 규모 감소 등이 요인이 됐다. 홍 소장은 “수거된 종이팩을 우유팩과 멸균팩으로 선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투명 페트병처럼 종이팩 배출을 의무화해 수거 물량을 충분히 확보했다면 삼정펄프도 충분히 더 가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제지업계를 비롯해 환경단체들은 유럽연합(EU)처럼 정부가 종이 활용을 강제하는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소장은 “일회용 컵에 개당 700원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 독일 튀빙겐시처럼 보증금제, 세금 부과,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 등이 대표적인 규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제지업체들의 기술개발(R&D)를 지원해 주거나 인센티브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내 대표 제지기업인 한솔제지의 2024년 연구개발비는 87억원에 그친다. 매출액 대비 비중이 0.4%에 불과하다. 열악한 개발규모 속에서도 한솔제지는 친환경 코팅액을 적용한 식품 용기 ‘테라바스’, 친환경 고차단성 종이 연포장재 ‘프로테고’는 현재 개발에 성공해 양산하고 있다. 이마저도 매출 규모가 작은 중소 제지사 사정은 더 열악하다.
홍 소장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탄소중립 포인트 제도를 통합해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보상을 제공하고, 공공기관부터 다회용기 사용을 의무화해 제지사들에게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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