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한국산 제품 관세율 인상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외교 수장이 연이어 미국을 방문해 대미 투자 이행 의지를 전달했지만, 미국 측의 불만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면서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나흘간의 방미 일정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관세율 인상을 위한 절차인) 관보 게재에 대해 미국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를 두루 만나 대미 투자 및 비관세 장벽 해소와 관련해 ‘약속 이행’ 의지가 있다고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측은 우리 시스템이 (자신들과) 다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데, 앞으로도 아웃리치(대미 접촉)를 계속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카운터파트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는 만나지 못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이날 워싱턴DC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했지만 관세 재인상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논의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한국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 제품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한국의 대미 투자 분야와 방식, 금액에서 확실히 주도권을 쥐려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라인 풀가동도 안먹혀…입법 지연을 '핑계'로 보는 美
여 본부장은 미국 의회 통상담당 의원들, 미국무역대표부(USTR) 등과 접촉해 한국 온라인플랫폼법 등 디지털법이 미국 대기업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 이행 의지도 변함없다는 점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막상 카운터파트인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의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통상당국은 “지난 2일 체결된 미·인도 간 관세 협상 등으로 그리어 대표 측 일정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면담 불발은 한·미 간의 냉랭한 기류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그리어 대표는 지난주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도 ‘한국 정부 측과 만나 대화하겠다’고 밝혔었다”며 “약속된 면담이 인도를 핑계로 불발됐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만남을 피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자원안보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만났지만 관세에 대해선 별다른 논의를 하지 못했다. 루비오 장관이 관세 및 통상 문제에 실질적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만남은 애초 교착상태를 뚫기엔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일부 통상 전문가는 미국이 이처럼 완고한 이유로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 이후 정부가 미국 측과의 소통에 너무 소홀했던 점을 꼽았다. 미국 측은 ‘관세 인하 약속’을 지켰지만 한국은 상임위 상정조차 안 된 상황이 길게 이어졌고, 이후 “우리 시스템이 미국과 다르다”거나 “국회 일정 탓에 지연됐다”는 해명은 미국 측에 ‘시간 끌기’로 보였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비관세 장벽도 문제다. 한·미 팩트시트에는 관세 인하 대가로 양국이 ‘한·미 FTA공동위원회’를 통해 농업·검역·디지털·지식재산권·노동 문제를 해결한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제시한 협의안을 두고 미국이 공동위 자체를 결렬시키면서 위원회는 지금까지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이번 사태는 미국의 ‘갑작스러운 몽니’가 아니라 누적된 불신 때문”이라며 “특히 비관세 장벽은 상당 부분 법 개정이 수반되는 약속들이라 해결 자체가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가 대미투자 법안 통과와 별개로 ‘1호 투자건’을 신속히 제시하는 등 미국 달래기에 나설 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행정부가 입법부 탓으로 돌리지 말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구체적 제안을 해야 한다”며 “실제 관세가 부과되면 이미 대기업이 대미 투자에 들어간 상황에서 자동차 업종부터 국내 후방산업에 엄청난 충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대훈/김리안/하지은 기자/워싱턴=이상은 특파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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