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163.57
(207.53
3.86%)
코스닥
1,108.41
(41.02
3.57%)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한중 수교·남북경협 기틀…장치혁 前고합그룹 회장 별세

입력 2026-02-05 23:51   수정 2026-02-06 00:11

1980년대 ‘3저 호황’에 힘입어 한때 재계순위 16위에 올랐던 고합그룹의 창업주 장치혁 전 회장이 5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1935년 평북 영변에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산운(山雲) 장도빈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만 15세가 되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18세라고 속이고 장교를 양성하는 육군종합학교에 들어갔다. 전장에서 요원 침투 및 수송 임무 등을 맡았다. 1953년 중위로 예편한 그는 용산고와 단국대 법정대를 졸업했다.

1956년 대한공론사 홍콩 주재원, 1958년 중화상사 상무를 거쳐 1966년 고려합섬을 창업해 본격적인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당시 한국 경제의 주축이었던 섬유 산업에 투신해 국내 최초로 폴리프로필렌 스테이플 섬유를 생산했으며, 1971년에는 국산 나일론 ‘해피론’을 개발해 일본산 제품을 대체하는 성과를 거뒀다. 1980년대 3저 호황기에는 폴리에스터 원료인 테레프탈산(TPA) 사업에 진출하며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 체제를 구축했다. 고합그룹은 이에 힘입어 한때 재계순위 16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공격적인 사업 다각화와 대규모 시설 투자가 독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최대 위기에 몰렸다. 당시 대기업 중 처음으로 워크아웃 대상이 됐고 2001년 채권단 결정으로 결국 그룹이 공중 분해됐다.

고인은 민간 외교 분야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했다. 친분이 깊었던 세지마 류조 당시 일본 이토추상사 부회장의 권유로 일찌감치 중국 시장에 주목한 그는 1988년 한국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수교국이던 중국 땅을 밟았다. 이어 덩샤오핑의 측근이었던 진리 국제우호연락회 부회장 등을 국내로 초청하는 등 한중 수교의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친서를 덩샤오핑에게 직접 전달하고, 안재형·자오즈민 선수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정부도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1992년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여했다.

대북 사업과 남북 경협 분야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비공개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잇달아 만났다. 이 과정에서 금강산과 나진·선봉 지역 개발 사업 등 남북 경제 협력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했다.

재계에서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다. 1989년부터 2001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수석부회장, 한·러극동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의 외연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나옥주 씨와 딸 호정·호진 씨, 사위 제레미 장 FTI컨설팅 수석고문, 김형준 기린건축 대표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 영락교회 공원묘역이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