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세종정부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기자들을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문을 열자마자 시선을 압도한 것은 한국전력거래소(KPX)에서나 볼 법한 대형 ‘일일 전력 수급 현황판’이었다.
화면에는 하루 시간대별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전, 석탄화력, LNG 등 각 발전원의 출력 상황이 색색의 그래프로 펼쳐져 있었다. 이 현황판은 전국의 원자력, 화력, 신재생에너지 등 발전원별 실시간 출력 현황과 공급 예비력, 예비율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전력 수급 상황을 ‘준비’에서 ‘심각’까지 5단계로 표시해준다.
이 현황판이 연동된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은 국가 보안 ‘가’급 시설로 중앙전력관제센터의 핵심 인프라다. 에너지를 관할하는 기후부 2차관실, 기후부 서울사무소, 한국전력거래소 등에 계기판이 설치돼있다.
기후부 관계자는 “전력을 산업부가 관할하던 시절엔 장관실엔 없던 시설”이라며 “장관님이 과거부터 현황판에 관심이 많으셨고, 취임 직후 ‘현장의 숫자를 직접 보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며 설치를 지시했다”고 귀띔했다.
김 장관은 모니터 앞으로 다가가 익숙한 듯 손가락으로 그래프를 짚었다. “보세요. 오늘은 구름이 안 껴서 낮에 태양광 생산이 정점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매일 이걸 보면서 잠 못 이루는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해가 지는 시간대’ 문제입니다.”
김 장관이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에너지 믹스’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작년 가을, 장기 연휴 기간의 전력 데이터였다는 말이 기후부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이른바 ‘경부하기(전력 수요가 낮은 시기)’의 역습이다.
김 장관은 “지난 가을 연휴가 길었을 때, 공장은 멈추고 사람들은 해외로 지방으로 휴가를 갔다. 그때 전력 수요가 40GW(기가와트)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며 “이렇게 되면 생산과 수급이 충돌하면 계통이 버티질 못하는 블랙아웃(대정전)이 온다”고 설명했다. 당시 실제로는 블랙아웃이 오지 않았다. 발전량을 조절하는 ‘출력제어’와 특정 발전소를 계통에서 제외하는 대책을 총동원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아니면 ESS(에너지저장장치)로 남는 전기를 흡수해야 하는데 현행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김 장관은 “현황판으로 발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여름 봄철에는 어떤지 전체적으로 어떻게 에너지 정책을 설계해야 할지 매일 매일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한국의 지리적 여건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그는 “미국은 플로리다에서 해가 져도 캘리포니아는 해가 떠 있고, 중국은 서쪽 사막에서 만든 태양광을 동쪽 상해로 보낸다”며 “하지만 한국은 동서가 너무 짧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가 지는 시간대(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어떻게 할 거냐가 숙제”라고 했다. 국토 전체의 기상 상황이 비슷한 한국은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스위치처럼 한 번에 켜지고, 한 번에 꺼진다. 중국과 미국처럼 ‘송전’으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구조다.
김 장관은 “우리는 땅덩어리가 좁아서 상대적으로 재생에너지 여건이 아주 좋은 나라가 아니다”면서 “하지 말자가 아니라 생각보다 여건이 불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믹스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도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적대적 관계’가 아닌 ‘보완적 관계’로 보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곧 수립될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계절별 시나리오에 따른 최적 모델을 만드는 걸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는 “계절별 시나리오를 포함해서 안전성, 유연성, 간헐성 등등 해결해가면서 어떻게 하는게 최적모델이 될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 해보고 그 과정 자체를 주민들과 공유하는게 12차 전기본의 숙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재생에너지도 많이 확대해야한다는 의견이 있는 만큼 이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리안/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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