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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헬스케어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린 처방 약 급여 관리업체(PBM)의 영향력이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부의 '가격 파괴' 플랫폼인 '트럼프Rx의 출범과 연방 정부의 관련 규제가 맞물리면서다. 미국에서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고가 약 처방 유도'와 '리베이트 착복'의 관행이 깨질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주도 '약값 낮추기'
13일 외신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미국인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처방 약 가격 비교 할인 사이트인 '트럼프Rx'를 공개했다.그동안 PBM은 제약사와 보험사 사이에서 약값 협상을 대행하며 리베이트를 챙겨왔다는 지적이 있었다. 약값이 높을수록 PBM이 가져가는 수수료가 커지는 구조 때문에 저렴한 약보다 비싼 약이 더 많이 처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최근 메디케어 파트 D(노인 의료보험 처방 약)에서 PBM의 보상을 약값과 분리하기로 했다. 여기에 정부 주도의 플랫폼 '트럼프Rx'가 등장하며 시장의 약값 하한선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CVS 케어마크'(CVS Caremark), 익스프레스 스크립츠(Express Scripts), 옵텀Rx(OptumRx) 등 상위 PBM 3개 사가 미국 전체 처방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상위 6개 사로 넓히면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이들은 보험사와 약국을 수직 계열화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통제해 왔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2024~2025년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빅3' PBM은 자사 계열의 전문 약국으로 환자를 유도해 전체 전문의약품 매출의 약 70%를 독식했다.

더 문제는 이른바 '스프레드 프라이싱'을 통한 폭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PBM이 약국에는 낮은 조제료를 지급하고, 보험사에는 높은 금액을 청구해 그 차액을 가로채는 방식이다. FTC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PBM들이 일부 제약품에서 수백에서 수천 퍼센트의 마진을 붙여 챙긴 초과 수익만 최소 73억 달러에 달했다.
최근 미국 약값 시장의 판을 더 흔든 것은 '트럼프Rx'다. 지난 5일 출시된 이 플랫폼은 정부 주도의 소비자 직접 구매 채널이다. 복잡한 보험과 PBM을 거치지 않고, 해외 선진국 수준의 '최혜국 대우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한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오젬픽'은 기존 미국 내 가격인 1000~1350달러에서 70~80% 할인된 월 199~350달러 수준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일부에선 소비자들이 보험 적용가보다 트럼프Rx의 현금가가 더 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존 PBM 모델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PBM이 주도하던 가격 결정권이 소비자와 정부로 넘어온다는 것이다.
미국 제약 생태계 영향
이런 변화는 관련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존에는 제약사가 PBM에 리베이트를 제공해야 처방집에 등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유인이 사라졌다.
보험사의 현금 흐름도 바뀔 전망이다. 리베이트가 PBM의 주머니가 아닌 보험사로 100% 환원되면서, 보험사는 이를 보험료 인상 억제나 보장 범위 확대에 쓸 수 있게 됐다. 이는 장기적으로 보험 가입자의 부담을 낮추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미국 약국 생태계도 변할 전망이다. PBM의 불투명한 수수료와 낮은 상환액으로 폐업 위기에 몰렸던 독립 약국들은 '합리적 계약 조건' 의무화 조항으로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스티븐 앤더슨 전미체인약국협회(NACDS)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법안은 약국 사막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연방 차원의 성취"라고 환영했다.
제약사의 수익성 변화도 주목된다. 리베이트 지출이 줄어드는 대신, 약값 자체를 낮춰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순가격' 경쟁력이 높은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PBM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미국 의약품급여관리협회(PCMA)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PBM의 협상력이 약화하면 제약사들이 약값을 마음대로 울리게 될 것"이라며 "결국 줄어든 PBM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보험료가 인상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기적으로는 혼란도 불가피하다. 미국 노동부 추산에 따르면 PBM들은 새로운 투명성 규정 준수를 위해 첫해에만 평균 100만 달러 이상의 정보기술(IT) 시스템 개편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기존 계약의 파기 및 재협상 과정에서 일시적인 약값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이런 변화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산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효능이 좋고 가격이 저렴해도, PBM이 쳐놓은 '리베이트 장벽'에 막혀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리베이트 100% 환원 정책은 이 장벽을 허물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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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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