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522.27
(167.78
3.13%)
코스닥
1,125.99
(11.12
1.00%)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타지에 정착한 이방인이 건네는 따뜻한 '렌탈' 위로

입력 2026-02-12 15:46   수정 2026-02-12 16:03

백인 남자 한 명이 일본인들 사이에 파묻혀 있다. 그가 앉아 있는 곳은 한 일본인의 장례식장이다. 남자는 연신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변을 살피지만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때 한 여자가 단상으로 나가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죽은 자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해줬는지, 얼마나 그가 그리운지 등등. 그녀의 흐느낌은 검은 정장들로 어두운 장내를 더 어둡게 한다. 그때, 관 속에 누워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난다. 혼비백산한 백인 남자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그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히카리, 2026)는 작년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도쿄국제영화제를 포함해 네 개의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화제작 중 하나다. 주지할 점은 <시라트>나 <센티멘털 밸류> 같은 아트하우스 영화로서의 예술성과 미학을 인정받았다기보다는, 이 영화가 주는 특유의 따뜻함으로 평가받고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영화에는 다소 예측 가능하고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들이 난무하지만,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마츠시게 유타카, 2025)가 그러했듯 영화는 완성도를 들이밀 수 없는, 혹은 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유쾌하고 치유적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는 7년 전 일본 도쿄로 이주한 미국인이자 아마추어 배우인 ‘필립’(브랜든 프레이저)의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근근이 단역을 맡고 있지만 번번이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중이다. 그의 낙이라고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며 아파트 건너편의 이웃들이 어떻게 사는지 창문을 통해 지켜보는 일뿐이다. 특별히 나아질 것 없는 일상에서 필립은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누군가의 대행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다. 친구가 없는 사람에겐 하루 동안 친구가, 잊혀가는 배우에겐 화려한 과거를 떠올리게 해줄 기자로, 본 적도 없는 아버지가 그리워지기 시작한 소녀에게는 일일 아버지가 되어준다. 그렇게 필립은 잠깐이지만 절실한 존재로 도시 전역을 활약하게 된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히카리’는 2011년 단편 <츠야코>의 연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감독이다. 그녀는 17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현재까지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따라서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 속 필립이라는 존재는 감독 히카리에 투영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성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낯선 땅으로 떠나고, 그 땅에서 살기로 한 외국인 말이다. 영화 속에서 ‘가이진(外人)’, 즉 외국인이라는 표현과 언어가 반복되는 것도 감독의 자조적인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의 초반은 아마도 감독이 미국에서 겪었을 문화 충격과 배움의 과정이 필립의 상황으로 치환되어 그려진다. 덩치 큰 미국인인 그가 작고 빼곡한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는 상황, 외국인 배우로서 들어오는 일이라고는 (한국의 ‘서프라이즈’와 같은) 재현 프로그램뿐인 현실, 그리고 대행 업무를 통해 배우게 된 일본 사회의 크고 작은 차별들 말이다.



많은 역할 중 필립이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은 ‘미아’의 아버지 ‘브라이언’ 역할이다. 그녀의 엄마는 싱글맘으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미아를 안쓰럽게 여겨 대행 업무를 의뢰한 것이다. 또한 미아가 최고급 사립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브라이언’은 적어도 사립학교의 면접날까지 미아의 아버지로 활동해 주어야 한다.

결국 점점 더 필립을 아빠라고 믿고 따르는 미아를 위해 그는 새로운 영화 작업을 포기하고 ‘브라이언’ 역할에 헌신을 다한다. 그러나 미아와 필립이 마침내 사립학교의 면접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 그녀의 엄마는 필립에게 작별을 고한다. 대행 업무 서비스가 끝난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지극히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필립은 이 모든 가짜 역할을 통해 사람과 관계, 그리고 공감과 애정의 가치에 대해 배운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버린 미아와 화해하고, 그녀의 가장 크고 든든한 친구로 남는다.



앞서 언급했듯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가 가진 치유의 힘은 엄청나다. 그것은 영화의 크고 작은 서사적 결점과 미숙함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하고 강렬하다. 가령 영화가 가진 온기는 단순히 이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가족과 사람 간의 애정뿐만 아니라, 필립이 자신의 덩치에 비해 턱없이 좁은 땅에서 라멘 한 그릇과 생맥주 한 잔으로 어떻게든 하루를 재미나게 버텨내는 활기와 끈기에서도 기인한다. 감독은 자신의 예명 ‘히카리(빛)’처럼 실로 영롱하고 포근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겨울의 끝자락인 지금, 모두에게 절실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