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아깝지 않은 환상적인 인생작", "100억살 악령의 '대환장 난리쇼'", "사랑스럽고 화끈한데 그 안에 인생도 담겼네", "파리에 온 듯 화려함의 정석"
공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비틀쥬스' '킹키부츠' '물랑루즈!'를 본 관객들이 남긴 각각의 리뷰다. 극이 추구하는 방향성, 비주얼, 주제, 콘셉트까지 각기 다른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하나. 전부 CJ ENM이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CJ ENM은 지난해 연말부터 무려 4개의 대작을 동시기에 무대에 올려 주목받았다.
스테디셀러 작품인 '킹키부츠'를 필두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리지널 투어가 수작으로 호평을 얻고 있고, 센세이셔널한 대사와 비주얼로 신선함을 주는 '비틀쥬스', 친숙한 음악을 토대로 한 쇼뮤지컬의 정점 '물랑루즈!'까지 관객들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서울 중심부(블루스퀘어)부터 동(샤롯데씨어터), 서(LG아트센터), 남부(예술의전당)까지 일제히 작품을 내건 자신감은 20년 넘게 다져온 'IP(지식재산권) 파워'를 실감케 했다


가장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는 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일본 토호 제작의 오리지널 투어 공연이 CJ ENM 주최로 서울에서 상연되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수작으로 꼽히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우연히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들어간 치히로가 신들이 드나드는 온천에서 일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무대는 수동 장치로 구동된다. 플랫한 무대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회전 무대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세트와 소품의 움직임에 빈틈없이 사람의 '손맛'이 가미된다. 가면신, 누에신, 오물신, 강의 신 등 다양한 외형의 신들 역시 퍼펫으로 구현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실제의 움직임과 손맛은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아날로그 감성이 이렇게나 상상력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니 놀라울 정도다. 1명의 배우로 시작한 가오나시는 크기를 늘려가면서 최대 12명의 배우가 모여 하나의 움직임을 완성해내기에 이른다. 용으로 변신한 하쿠는 4m로 규모감이 상당한데 이 역시 여러 명의 배우가 합을 맞추며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무브먼트를 만들어낸다. 이 밖에도 거미처럼 6개의 팔을 가진 가마 할아범, 거대한 유바바의 얼굴 등을 표현하기 위해 정교한 합이 따른다.
연기가 펄펄 끓어오르는 온천물, 객석을 날아다니는 신과 용의 움직임까지 섬세하고 설득력 강한 연출에 연신 감탄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이 단번에 떠오를 정도의 생동감 있는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동시에 아날로그 감성은 상상 이상이니 그야말로 '수작'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예술적 표현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공연은 오는 3월 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계속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상상의 영역도 있다. 바로 팀 버튼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비틀쥬스'다. 팀 버튼은 '배트맨' '가위손' '찰리와 초콜릿 공장' '크리스마스의 악몽' '웬즈데이' 등 독특한 세계관과 감각적인 비주얼로 자신만의 장르를 견고히 해온 인물이다.
'비틀쥬스'는 지옥에서 쫓겨난 악동 유령 비틀쥬스가 엄마를 여의고 반항아가 된 소녀 리디아와 얽히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갇힌 비틀쥬스는 인간에게 보이지도,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투명한 존재다.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그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저승법'이 떠오른다. 산 자가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모두가 자신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근데 웬걸. 리디아의 눈에 비틀쥬스가 보인다.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세 번의 외침을 듣기 위해 비틀쥬스는 리디아에게 접근한다.
마음을 열고 상상하는 자세 없이는 팀 버튼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뮤지컬은 더더욱 그렇다. 마치 테마파크와도 같은 휘황찬란한 무대가 눈 앞에 펼쳐진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트, 공중 부양하는 유령, 손끝 움직임에 따라 타오르는 불꽃, 거대한 퍼펫 '왕뱀이'까지 다채로운 시각적 요소들이 관객들을 쉼 없이 홀린다. 시작부터 재기발랄하고 엉뚱한 매력을 폭발시킨다. 팔이 뽑히고 다리가 잘리는 등 기괴한 모습은 뮤지컬 마니아일지라도 신선하다. '비틀쥬스'이기에 가능한 지점이기도 하다.
거침없는 대사를 쏟아내는 초록 머리의 비틀쥬스는 가장 강력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그는 B급 감성의 코믹 대사를 뱉어내는데 그 안에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욕설도 꽤 많다. 코미디 각색에는 코미디언 이창호가 참여했다. 이창호는 "처음에는 정치·종교·성 등 어떤 구애도 받지 않은 날것의 요소들을 전부 가져왔었다. 이걸 익히고 염지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심설인 연출은 "공연의 즐거움 안에 기쁨·슬픔 등의 여러 감정과 노래는 물론이고, 비주얼 임팩트까지 포함이 될 거다.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틀쥬스'는 이러한 기류에 맞춰서 과감하게 시도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3월 22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한다.

'킹키부츠'와 '물랑루즈!'는 이미 입증된, 검증된 작품으로 이번에도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모았다. 둘 다 화려한 볼거리와 군무가 넘쳐 '뮤지컬 입문자'들도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킹키부츠'는 1979년 영국 노샘프턴의 수제화 공장들이 경영악화로 폐업 위기에 내몰린 가운데, 80㎝의 '킹키부츠'로 돌파구를 찾아낸 한 구두공장의 이야기를 그린다.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구두공장을 물려받게 된 찰리가 드래그 퀸 롤라를 만나게 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높은 하이힐을 신고 파워풀한 안무를 소화하는 엔젤들, 그 매혹적이고 강렬한 외형 이면에 편견에서 벗어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해와 성장을 그리는 작품이라 관객 호응이 좋다. 문호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해 "너 자신이 돼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친다"고 외치는 롤라의 표정에선 당당함이 흘러넘친다.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커튼콜까지도 작품의 연장선처럼 '깊은 포용'이 느껴진다.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은 스테디셀러 뮤지컬로써 이번에도 이름값을 해냈다. 공연은 3월 29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이어진다.
또 다른 쇼 뮤지컬인 '물랑루즈!'는 약 3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19세기 말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미국 출신의 가난한 젊은 작곡가 크리스티안이 물랑루즈 최고의 스타 사틴과 사랑에 빠지고 이후 둘의 사랑이 위기를 겪는 과정을 그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화려함이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클럽 물랑루즈에 들어선 것 같은 새빨간 조명과 거대한 코끼리 조형물이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물랑루즈의 상징인 빨간 풍차도 빠지지 않는다. 1막 마지막엔 에펠탑 조형물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조명이 쏟아져 로맨틱함을 극대화한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작품이다. 캉캉 춤을 비롯한 다채로운 군무는 흥겨움을 배가하고, 오펜바흐부터 아델, 마돈나, 시아, 리한나 등 세대를 초월한 아티스트들의 노래 70여 곡을 매시업 한 넘버 역시 친숙하게 귀에 감긴다. 뮤지컬계 거물인 홍광호는 지난해 연말·올해 연초를 '물랑루즈!'와 함께 했다. 공연은 이날 막을 내린다.

2003년 라이선스 뮤지컬 '캣츠'에 투자하면서 공연 사업에 뛰어든 CJ ENM은 2006년 창작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업을 키웠다. '베르테르' '광화문 연가' 등의 창작 뮤지컬은 물론이고 '브로드웨이 42번가' '비틀쥬스' '시라노' 등의 라이선스 작품까지 무려 370여편을 선보여 왔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물랑루즈!' '킹키부츠' '보디가드' '빅피쉬' '백투더퓨처' 'MJ' 등을 공동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리그 정회원으로 토니어워즈 심사에도 참여 중이다.
이달 초 열린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예주열 CJ ENM 공연사업부장은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CJ ENM이 공연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처음 받은 프로듀서상이었다. 당시 그가 남긴 수상 소감은 공연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센과 치히로처럼 행방불명(센과 치히로의 해방불명)된 김종욱을 찾느라(김종욱 찾기)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지붕 위에 바이올린(지붕 위의 바이올린)도 올려보고, 광화문에서 슬픈 사랑 노래도 많이 불렀다(광화문연가).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페기 소여(브로드웨이 42번가)처럼 공연 사업을 총괄하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공연 사업을 총괄하자마자 코로나라는 거인들이 몰려왔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왜 신은 내게만 이러한 아픔을 주는지(시라노) 참 아프고 아프고 아팠던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비틀비틀(비틀쥬스)거렸지만, 꿋꿋하게 일어서고자 노력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그리고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니(킹키부츠) 이러한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올라오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국내와 더불어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을 더 키울 예정이다. 현재 '물랑루즈!' '킹키부츠' 뿐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생애를 다룬 'MJ' 역시 토니상을 받으며 브로드웨이 대표 뮤지컬로 자리 잡은 상태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올해는 오리지널 IP 영화 '댄싱퀸'으로 글로벌향 창작 뮤지컬을 제작한다. 2027년 한국 공연 개막을 목표로 올해 대본과 음악을 완성하고,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광화문연가' 새 시즌도 개막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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