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한화가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장비인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더는 서로 다른 반도체 칩을 범프(가교) 없이 포개어 결합할 때 쓰는 장치다. 칩의 두께를 더 얇게 만들면서 데이터 전송 속도까지 올릴 수 있어 차세대 패키징 기술로 꼽히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세미텍은 네덜란드의 장비 설계 회사 프로드라이브와 손잡고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프로드라이브는 독특한 사업 구조를 가진 회사다. 마치 팹리스 회사처럼, 제조 라인을 갖추지 않고 고객사들의 의뢰를 받아 장비 부품이나 기계 장치를 설계해주는 일을 한다. 2024년 이들의 연매출은 5억 5200만 유로(약 9420억 원)에 달한다.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회사인 ASML의 파트너사로도 잘 알려졌다.
프로드라이브는 한화세미텍이 개발 중인 하이브리드 본더의 핵심 부품을 설계할 가능성이 크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달 열렸던 세미콘 코리아 2026에 참석해 고정밀 모션 드라이브, 고주파(RF) 증폭 모듈 등 첨단 패키징 공정에 필요한 정밀 제어 장치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이 사안에 대해 "프로드라이브와의 기술개발·협력 사항은 확인하기 어렵다"며 "차세대 하이브리드 본더를 곧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장비 자회사인 세메스도 하이브리드 본더를 전략 제품으로 삼고 연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세메스는 웨이퍼-투-웨이퍼(W2W) 하이브리드 본더를 개발하고 있다. 그간 고대역폭메모리(HBM)처럼 웨이퍼 위에 개별 D램을 각각 얹어서 결합하는 다이-투-웨이퍼(D2W) 방식을지원하는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 소식은 잘 알려졌지만, W2W 방식이 연구되고 있다는 게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한 반도체 장비 업계 고위 관계자는 "세메스 고객사의 W2W 본딩 테스트 평가가 상당히 좋게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객사는 모회사인 삼성전자로 추정된다.

하이브리드 본더는 차세대 패키징 장비다. 서로 다른 칩 또는 웨이퍼를 범프 같은 연결 재료 없이도 포개는 하이브리드 본딩에 쓰이는 핵심 설비다. 기존과 달리 칩 사이 간격이 '0'에 가까워 데이터 전송 속도가 더 빨라지고, 칩 두께까지 얇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는 하이브리드 본딩 적용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7세대 HBM(HBM4E)에서 하이브리드 본딩을 일부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세계 1위 파운드리 회사인 TSMC도 'SoIC'라는 하이브리드 본딩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실리콘 포토닉스 상용화를 시도하는 엔비디아, GPU 강자 AMD 등이 이들의 패키징 기술을 활용해 차세대 칩을 만든다.

이미지센서·낸드플래시 등 활용 범위와 본딩 공정 횟수가 다소 제한됐던 W2W 하이브리드 본딩 시장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송재혁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사장(CTO·최고기술책임자)은 세미콘 코리아 2026 기조연설에서 "GPU위에 여러 개의 HBM을 적층하는 zHBM에서 여러 번의 W2W 본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하이브리드 본 한화세미텍과 세메스가 가야할 길은 쉽지 않다. 이미 이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강력한 경쟁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화세미텍은 세계 1위 장비회사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와 전통의 본딩 강자인 베시의 하이브리드 본더 합작품을 뛰어넘어야 한다. 또한 라이벌 회사인 싱가포르 ASMPT, LG전자, 한미반도체 등도 AMAT·베시 콤비를 쫓기 위해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세메스가 도전하는 W2W 분야도 이미 완숙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선두권을 꿰차고 있다.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오스트리아 EVG는 이미 2016년 경부터 소니의 이미지센서 라인 등에 W2W 본딩 장비를 납품하면서 독보적인 양산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패키징 장비 회사들은 앞으로 하이브리드 본딩의 쓰임새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시장 진입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zHBM 소개에서 하이브리드 본딩의 쓰임새를 강조했듯이 향후 이 분야가 상당히 주목받을 것"이라며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강자들이 있는 만큼, 국내 회사들이 파트너사와의 협력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개발 속도를 앞당기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강해령 기자 hr.kang@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