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 무렵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에서 악기를 관리하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피아노를 발명한 뒤 ‘피아니즘(pianism)’엔 국가명이 붙어 그 시대를 풍미한 음악 트렌드를 대변해왔다. 국가 간 경계가 희미해진 지금도 피아니스트의 국적에 따라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기대하는 나름의 피아니즘이 존재한다. 서양 음악사의 기둥이 된 독일 피아니즘부터 20세기를 빛낸 러시아 피아니즘까지, 그 계보를 되짚었다.

깊은 울림, 견고한 논리와 같은 독일 피아니즘 이미지는 19세기 후반 자리 잡았다. 멘델스존이 1843년 세운 라이프치히 음악원은 바흐의 음악적 유산을 물려받아 보수적인 색채를 띠곤 해 절제미와 견고함을 강조했다. 리스트의 제자인 한스 폰 뷜로도 객관적인 해석과 뚜렷한 타건을 추구했다. 20세기엔 ‘건반 위의 사자’로 불린 빌헬름 바크하우스가 완숙미 가득한 음악으로 독일 피아니즘의 전통을 계승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날린 빌헬름 켐프도 작품 전체를 내려다보는 구조적 해석에 충실한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대에도 독일 피아니즘은 주류였다. 지난해 타계한 알프레트 브렌델은 리스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작품을 공부하면서 정교한 터치와 깊은 분석력을 담은 앨범들을 남겼다. 칠레 출신인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리스트의 제자였던 마르틴 크라우제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독일어권 음악을 파고들었다. 완벽주의적인 태도로 악보를 해석하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페달 사용을 절제해 성부의 뚜렷함을 강조하는 언드라시 시프도 독일 피아니즘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러시아 피아니즘을 소개할 땐 연주자의 폭발적 에너지도 빠질 수 없다. 팔과 어깨의 무게를 온전히 건반에 전달하는 강한 타건은 많은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보여준 매력이다. 음 하나하나에 힘을 불어넣는 이 타건은 쉼표의 여백과 충돌해 극적인 긴장감을 남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그리고리 소콜로프, 미하일 플레트뇨프, 보리스 베레좁스키 등과 같은 우승자를 배출하며 이 피아니즘의 전승 공간이 됐다. 화려함과 꼼꼼함을 겸비한 예브게니 키신, 혼신의 힘을 쏟는 연주로 유명한 다닐 트리포노프가 러시아 음악 계보를 잇고 있다.
프랑스 피아니즘을 만끽하고 싶다면 장에프랑 바부제의 연주를 들어볼 만하다. 라벨, 드뷔시 등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을 연주할 때면 남다른 우아함이 돋보이는 피아니스트다. 화려함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알렉상드르 타로도 프랑스 피아니즘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한 명의 피아니스트도 곡에 따라, 심지어는 한 구절 안에서도 표현을 다르게 하기 마련이다. 피아니즘은 연주의 개성을 구조화해서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 정도로 여기는 게 좋다. 피아니즘이란 표현으론 담을 수 없는 저마다의 음악 세계가 드넓으니 말이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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