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로 2시간 40분 정도 걸리고, 부산역에서 공연장까지도 거리가 꽤 되지만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찾아가 볼 만큼, 이 작은 공연장은 관객인 나에게 여러모로 감동과 즐거움을 준 곳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공연장은 바로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금난새 뮤직 센터(이하 GMC)’다. 이곳은 지휘자 금난새가 지난 2021년 고향인 부산에 세운 음악 공간으로 120~150석 규모의 객석을 가진 홀에서 일 년 내내 풍성한 실내악 연주가 펼쳐지고 있다.

GMC는 ‘F1963’ 내 지하에 자리하고 있는데 F1963은 1963년부터 2008년까지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공연장인 GMC와 더불어 갤러리, 서점, 카페,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어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쉬어가며 문화예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 기업인과 부산 출신의 음악가가 뜻을 모아 부산 시민들에게 선사한 뜻깊은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난해 여름 열린 <2025 GMC Summer Music Festival> 때 좋아하는 연주자의 연주를 듣기 위해 처음 이곳을 방문했다. 프로그램을 훑어보다 열흘간의 축제 기간 동안 열리는 기악 리사이틀, 실내악, 챔버 오케스트라 등 15회의 다채로운 공연과 여기에 참여하는 40여 명의 훌륭한 연주자들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이곳에서 열리는 공연은 무료! 이미 입소문이 많이 나서 티켓이 빠르게 마감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 계정을 팔로우하며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멋진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여름 GMC에서 특별한 인상을 받고 꼭 한번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2월 7일 오후에 열린 2026년 첫 번째 공연에 함께 할 수 있었다. <2026 GMC Chamber Series>의 첫 번째 무대이기도 한 이날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선율.
앞서 말했듯이 GMC는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상에서 유리창을 통해 공연장이 내려다보이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관객 입장이 시작되기 전, 주변을 둘러보다 마침 유리창 아래로 리허설 중인 연주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공연 직전까지도 악보를 펼쳐두고 연습을 하는 피아니스트의 뒷모습에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더 커졌고, 어쩐지 좀 더 인간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일찌감치 티켓 예약이 마감된 이날 공연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들이 자리했다. 무대를 정면으로 하여 3면으로 둘러싼 객석은 단차가 있어서 어디에 앉아도 시야가 좋고 높은 층고와 유리창 덕분에 시원한 느낌이 든다. 국내에서 음향 좋기로 소문난 유수의 공연장을 설계한 김남돈 음향 컨설턴트가 참여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유리로 인한 음향의 단점도 잘 보완이 되었고 울림도 좋다.
선율 피아니스트는 1부에서 베토벤과 드뷔시를 선보였다. 경쾌한 리듬과 유머러스함이 돋보이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번은 특유의 구조감이 잘 드러났고,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쌓은 연주자의 감성이 잘 녹아든 드뷔시 전주곡의 작품들은 풍성한 색채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2부의 첫 곡은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중 11번 ‘밤의 선율’. 공연이 시작될 때만 해도 홀 상부의 유리창 너머로 아직 남아있던 빛이, 이 곡을 연주할 때쯤엔 모두 사라져 깜깜했다. 말 그대로 ‘밤의 선율’이 들려준 ‘밤의 선율’은 연주도 아름다웠지만,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음악이 어우러져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마지막 곡은 연주자의 남다른 애정이 담긴 브람스의 곡,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였다. 긴 호흡으로 장중하게 완성해가는 이 작품은 연주자의 기량은 물론 집중력과 유연함도 중요한 곡이 아닐까 싶은데, 선율 피아니스트는 젊은 연주자답게 생명력 넘치는 표현으로 관객들을 서서히 클라이맥스로 이끌었다.
공연장과 프로그램이 좋아서 먼 길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은 곳이었지만 이날 느낀 또 하나의 장점은 이곳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매너가 아주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재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공연장 밖의 옷걸이에 옷을 걸어두고 입장했으며, 연주 중에 방해가 되는 소음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물론 편안하게 연주를 즐기면서도 집중하는 에너지가 차곡차곡 쌓여 음악이 주는 감동을 배가시켰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GMC에 대한 최근 기사를 검색해보다가 한 잡지에 실린, (금난새 지휘자의 아들이자 이곳을 이끄는) 금다다 총괄 디렉터의 인터뷰에 시선이 멈췄다.
“GMC는 ‘둥지’를 지향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금난‘새’이기도 하니, 예술가들이 잠시 머물며 날개를 기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월간 「객석」 2월호 중
젊은 음악가들은 이곳에서 연주하며 대선배 음악가인 금난새 지휘자로부터 음악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나는 GMC가 지역의 시민들에게도 ‘둥지’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 속에서 양질의 클래식 공연을 즐기며 몸과 마음을 쉬어가고 연주자들이 전하는 좋은 에너지를 한껏 흡수할 수 있으니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날개도 더욱 튼튼해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둥지처럼 아담하고 아늑하니 말이다.
그동안 필자가 칼럼을 통해 소개한 작은 공연장들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클래식 공연에 간다는 건 ‘음악을 듣기 위함’이지만 그 ‘공간’이 주는 힘과 그것을 통해 살아나는 감각은 꽤 크고 다채롭다. 작은 공연장이 가진 저마다의 스토리는 그들을 더 단단하게 또 빛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필자는 여러 공연장에서 클래식을 즐기겠지만 보석처럼 반짝이는 작은 공연장을 찾아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난생처음 칼럼니스트가 되어 혼자만의 생각을 독자들과 나눌 수 있어 설레고 기쁜 1년이었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도 ‘작은 공연장에서 맛보는 소소하고 짜릿한 즐거움’이 한 번쯤 꼭 함께하길 기원한다.
권혜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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